죄와 형벌

로마서1:18-32

오늘은 죄와 그에 따른 형벌을 주제로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죄에 대해 설교하는 것이 전하는 저도 듣는 여러분도 기분 좋은 것은 아니지만 죄의 개념은 복음의 핵심적 요소입니다. 그러니 오늘 죄와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에 대해 잘 깨닫기 바랍니다.

죄는 반드시 형벌이 따른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범죄한 결과 인류는 죽음의 형벌아래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 되었습니다. 이것인 인간은 누구나 늙고 병들어 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죄에 대해 진노하시며 회개하지 않을 경우 형벌을 내리신다고 합니다. 우리는 죄가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해 형벌을 받게 한다는 것을 유념하고 하나님보시기에 합당치 않은 것을 괜찮다고 하지 말고 말씀에 합당하게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먼저 18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진리 αληθεια는 복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고 사람이라면 우주 만물을 통해 창조주의 존재를 깨닫고 그 분께 예배하고 순종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진노 οργη는 의로운 사람이라면 악을 보고 반드시 느껴야 할 분노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혐오와 염증의 감정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 다음 경건치 않음 ασεβεια는 하나님에 대한 존경심의 결여, 반항적인 태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치 않고 반항적인 태도에 분노하십니다.

그 다음 19절부터 20절을 봅시다. 여기엔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19절에 하나님을 알만 한 것이 저희 속에 보인다고 한 것은 인간의 양심을 가리킵니다. 양심은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기능을 합니다. 욕망을 다스리고 양심에 따라 산다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20절에는 창조주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보여진다고 나옵니다. 자연을 통해서도 창조주의 존재를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직접 계시를 받지 못한 이방인들도 양심과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뜻, 또는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고 거역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은 진노하신다는 것입니다.

양심과 자연 계시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보여주는 기능을 합니다. 밀림에 사는 원주민이 어느 날 손목시계를 발견한다면 첨엔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는 시계를 본적이 없고 무엇에 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신기하게 여기며 두고 보면서 점차 바늘이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바늘의 위치는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도 발견하고 시간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물건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누군가 만들었다는 결론에 도달할 겁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렇게 추론할 수 있도록 지적이며 이성적인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자연을 보고 관찰할 때도 마찬가지 결론에 도달해야 합니다.

인체의 신비 같은 TV 프로그램을 보면 우리 몸의 각 부분은 그 기능에 가장 적합한 상태로 만들어져 작동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손가락과 얼굴은 다른 지체에 비해 섬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신경과 운동근육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음식이 넘어갈 때 기도는 보통 닫히는데 잘못해 움식물이 들어가면 심하게 기침해서 배출시킵니다. 눈은 자동초점기능을 가지고 있어 먼 곳, 가까운 곳을 거의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최첨단 사진기도 아직 그런 기능이 없습니다. 40도를 넘는 무더위 속에선 땀을 배출해 체온을 조절하고 극한 상황에서 뇌는 생명을 보호할 수 있도록 실제 상황과는 전혀 다르게 인식하여 지시를 내리기도 합니다. 인체의 이런 기능과 능력이 다 우연일까요?

자연 속에 있는 창조주의 능력과 신성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며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오히려 우상을 숭배하며 부도덕하게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28절). 하나님을 인정한다고 하면서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사는 사람도 결국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것은 자신이 주인 곧 중심이 되려는 교만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절제하고 거룩하게 사는 것보다 육신의 욕망을 따라 그 때 그 때 기분 좋은 데로 방탕하게 사는 걸 더 좋아합니다.

양심은 통증을 느끼게 하는 신경조직과 같은 기능을 합니다. 다치면 아프죠. 그래서 조심합니다.손이나 발이 마비돼 통증을 느끼지 못하면 부딪쳐 부러져도 모를 겁니다(영화,’통증’). 위는 구멍이 뚫릴 때까지도 통증을 느끼지 못해 위암이 말기까지 진행할 때까지 잘 모른답니다.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양심의 가책은 죄를 멀리하게 도와줍니다. 그런데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돌이키지 않고 합리화하고 그러면 양심이 무뎌져 죄에 대한 인식이 약해집니다. 이런 상태를 바울은 28절에서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하나님도 허락하셨다고 말하는 바보가 어딨습니까? 경고하고 책망해도 안 들으니까, 그렇다고 당장 죽일 수도 없고 그래서 자연 수명이 다할 때까지 그냥 놔두시는 것이지 합당치 못한 일을 해도 좋다고 허용한 게 아닙니다. 계속 그런 식으로 살면 영혼이 멸망합니다.

오늘 본문 속에 언급된 죄인의 모습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 앞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뜻과 질서를 벗어난 행동을 죄가 아니라고 우깁니다. 이런 행동에는 23절, 25절에 동물의 형상을 만들어 우상을 숭배하는 것,  26, 27절에 동성간의 수치스런 관계, 29절부터 31절에 여러 가지 부도덕한 행동들이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연약해 넘어질 때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이런 행동은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부족해서 실수하는 것과 의도적으로 자기를 위해 나쁜 짓을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29절 30절에 ‘합당치 못한 일’로 열거된 것들을 가볍게 생각하고 그 정도는 괜찮다고 말하면 안됩니다. 32절을 보면 이것들은 모두 ‘사형’에 해당하는 죄라고 합니다. 시기하는 것, 분쟁하는 것, 사기치는 것, 수근수근 비방하는 것, 모두 죽어 마땅한 죄라는 것입니다. 동의합니까? 번지점프나 구름다리를 건널 때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죠. 잘못하면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의 근원은 죽음에서 나옵니다. 죄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느껴야 합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죄를 멀리하기 바랍니다.

죄인의 특징가운데 하나는 성경에 합당치 못한 죄라고 분명히 나와 있는데도 고칠 생각을 안하고 구차한 변명으로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32절에 보면, 그 같은 행동은, 앞에 언급한 여러 죄들을 가리키는데, 사형에 해당된다고 하는데도 괜찮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까지 끌어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 한 두 명만 있어도 그 사람 주변에 있는 교인들이 오염되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 그러니 죄에 대해 경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함께 죄를 짓게 하는 친구는 가까이 하면 안됩니다. 주님도 그런 형제와는 회개할 때까지 교제하지 말고 멀리하라고 했습니다.

청년 시절에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못한 행동 중에는 음주나 흡연이나 성과 관련된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행동들은 불의, 추악, 시기, 분쟁, 비방, 배신과 관련되기 쉽습니다. 음주나 흡연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숨어서 하게 되면 결국 자기 양심에 죄를 짓게 되고 믿음이 연약한 자가 그걸 볼 때는 실족케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음란물에 빠지면 성령의 집인 우리 몸을 추악하게 하는 것이고 이성교제 하면서 혼전 관계는 간음죄이며, 삼각관계를 만들면 시기와 분쟁과 배신에 빠지게 될 겁니다.

주님과 교회를 섬기려는 사람은 먼저 죄의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다소 시간이 걸립니다. 목자나 찬양팀이 되기 전에 먼저 음주나 흡연이나 잘못된 이성교제 이런 것을 바로 잡아야 좋은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런 모습에 실족할 수 있고 비방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음주나 흡연이 덕을 세우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니 선한 일을 사모하는 사람들은 복음의 일꾼으로 쓰임받기에 합당하게 해로운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남녀 관계가 분명치 못해 형제 자매의 관계를 손상시키는 행동은 삼가해야 마땅합니다. 

복음의 일꾼인 목회자, 운영위원, 목자, 찬양팀은 모두 음주와 흡연과 남녀관계에서 허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음주나 흡연이나 이성교제나 행실에서 비난을 받을 만한 문제가 있는 사람은 먼저 그것들로부터 자신을 깨끗케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교회 앞에서 일해야 합니다. 그래야 본인도 떳떳하고 교회도 비난을 듣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대부분 죄의 욕망은 그걸 버리려는 의지보다 강합니다. 노력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기도하며 성령의 도움을 구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심령을 새롭게 하기 바랍니다. 교회 다닌지 오래 됐지만 거듭나지 못했으면 먼저 거듭나기를 구하기 바랍니다. 거듭나야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옛 습관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거듭나서 심령이 새로워지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면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을 닮아 갈 겁니다. 거듭나면 이렇게 됩니다.

오늘 메시지의 핵심은 죄를 심각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분입니다. 죄인은 결국 사형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죄를 죄로 인정하는 게 필요합니다. 합당치 못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죄의식, 죄책감이 생기도록 구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죄를 멀리할 수 있습니다. 죄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나기 바랍니다. 죄를 은폐하려는 사람과는 당분간 교제하지 마세요. 저도 그런 사람은 목자든, 찬양팀이든 세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여러분 자신을 깨끗케 하는 일에 힘쓰기 바랍니다. 주님이 받으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한 주간 성령의 인도아래 거룩하게 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