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로마서1:1-17

오늘부터 로마서를 본문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설교는 성경말씀을 오늘 우리 상황 속에서 다시 듣고 그 말씀을 따라 살도록 전하는 메세지입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바울 사도께서 로마 교회에 주신 일차적 의미를 찾아보고 그 다음 그 메시지가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고 또 어떻게 삶에 적용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오늘은 로마서 1장 1절부터 17절까지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7절까지 내용은 바울의 사도직, 부활로 입증된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 그리고 로마 교회에 문안 인사로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 8절부터 17절까지는 바울이 로마교회를 직접 방문하여 복음으로 교제하려는 열망과 믿는 자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의 의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 복음을 위해 택함 받았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과 믿음이 바울로 하여금 복음 전파와 교회를 세우는 일에 전념할 수 있게 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이 시간에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 이런 질문을 해보기 바랍니다. 정체성은 신앙생활에 큰 영향을 줍니다.

1절을 보면, 바울은 로마 교회에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복음을 위해 택정함을 입은 사도”라고 소개했습니다. 종과 사도 이 두 단어는 바울의 정체성과 인생의 목적을 잘 보여줍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이 질문은 누구나 가져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예수님의 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또한 복음을 위해 택함 받고 파송된 사람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종의 특징은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주인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또한 종은 자기 주장이나 자기 계획 같은 것은 없습니다. 매일 매일 주인의 지시에 따라 움직입니다.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이후 바울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사도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도의 헬라어 αποστολοS는 ‘보내다’, ‘파송하다’ 뜻을 가진 동사 αποστέλλω에서 나온 말입니다. 바울은 본래 12제자에 속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다메섹에 있던 바울을 찾아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 부르셨습니다. 그 때의 상황은 사도행전 9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목회자인 저와 목자들과 주님을 섬기려는 모든 일꾼들은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예수님을 섬기는 종의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불평하지 않고 기쁘게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종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나는 주인이 아니다', '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내 마음대로 살 수 없다'. 여러분도 주님의 종이라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이 세가지 마음이 있습니까? 그래야 진짜 종으로 살 수 있습니다. 말로는 종이라고 하면서 자기 맘대로 살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없습니다. 내 인생에 대해 내가 주인이라는 의식이 무의식 속에서도 없어져야 주님 말씀대로 순종하며 잘 섬길 수 있습니다.

지금도 부족하지만 제가 종의 마인드가 더 부족할 때가 있었습니다. 주님의 종으로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섬기는 목회를 하려고 신학교 가서 공부하면서 교수되는 게 더 좋아보여 방향을 바꾸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목사 안수 받고 시골교회로 가게 맘에 안 들어 3년이 지날 쯤에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거기서도 3년쯤 하다가 또 유학을 가겠다고 그만 두었습니다. 그 후에도 더 맘에 드는 교회에서 목회를 하겠다고 이리 저리 다니다 미국까지 와서 지금 늘푸른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이리 저리 다닌 게 주님 뜻이었을까요? 아니면 제가 좋은 대로 한 걸까요? 주님 뜻을 구하며 인도받은 부분도 있지만 제 생각대로 한 부분이 더 많습니다. 이미 지난 일이라 어떻게 바로잡겠습니까?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며 앞으로는 내 생각대로 하지 않고 주님의 뜻에 받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할 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나 부름 받은 사람이라는 소명의식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6,7절에서 로마 교인들에게 ‘너희도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름 받은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로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예수 믿고 로마 교인이 된 것이 아니고 그 중에 일부 사람들이 예수 믿고 로마교회에 소속되게 된 것 아닙니까? 당시 로마 인구 대 로마교인수를 비교하면 100대 1, 아니 1000대 1도 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부름 받은 결과입니다. 예수 믿고 안 믿는 것을 전적으로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기로 결정하는 최종 순간만 놓고 본다면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시간 여기 있는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믿기로 결정해서 여기 교회당에 있는 것이고 저 세상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믿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좀더 깊게 생각해보면 믿음에 이르는 과정에는 우리의 결정 이전에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성령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다는 것은 적어도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범죄와 심판과 멸망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계획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예수 믿고 여기 앉아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생각이 없다면 왜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을 믿습니까? 죄 용서받고 구원 얻어 천국 갈 수 있는 복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주일마다 수고롭게 교회다니겠습니까? 이런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믿음인데 여러분 경험의 차원에서 볼 때 그 믿음이 내 맘대로 의지대로 되는 것입니까? 믿고 싶고 믿어져야 믿는 것 아닙니까? 여기까지는 동의하시죠?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사람을 받아 성도로 부르심을 입었다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건 뭡니까? 앞서 말한 것처럼 믿는 최종적인 결정은 우리 각자가 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죄인임을 깨닫고 믿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이런 과정은 모두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그렇게 되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바울 당시의 로마상황보다 지금 시애틀은 불신자 대비 교인수가 더 높으니까 100 대 1로 봅시다. 나를 포함해 100명이 있는데, 이 중에서는 나만 예수를 믿는다고 할 때 내가 뭐 영적으로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하나님을 알고 천국이 있는 것도 알고 예수 믿어야 구원얻는 이치도 알고 그래서 예수 믿겠다고 한 겁니까? 아니죠.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여 구원얻고 천국가게 해주려고 예수 믿는 가정이든, 예수 믿는 친구든, 복음전하는 사람이든 누군가를 통해 복음을 듣거나 교회가자는 권유를 받거나 그것도 아니면 인생 사는 의미를 몰라 절망할 때 예수님께 나오도록 이리 저리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이 사람들을 예수믿도록 부르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나를 불러주셨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세상을 살다가 천국으로 가기 바랍니다.

끝으로 로마 교회를 사랑으로 섬기려는 바울의 목회열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9절 이하를 보면 바울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너희에게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고 …..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줘 너희를 견고케 하여… 믿음으로 서로 격려하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8절 보면,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니” 이런 말이 나오는데, 로마 교인들은 복음 전파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전도에 힘쓰는 로마 교인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1,2,3차 전도여행을 통해 여러 곳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지만 로마서를 보낼 때까지 로마에 직접 간 적은 없었습니다. 로마교회가 누구에 의해 설립되었는지 분명치 않습니다. 여기에 대해 세가지 설이 있습니다. 1)가톨릭교회는 사도 베드로가 로마교회를 세우고 24년 동안 감독했다고 주장하는데 정황증거가 잘 맞지 않습니다. 2)예루살렘에서 오순절 사건을 경험하고 로마로 돌아온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사람들이 세웠다고 하거나, 3)바울에 의해 개심한 사람이 로마에 거처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모아 교회를 세웠을 것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교회를 누가 개척했든 바울 처럼 사심 없이 복음을 위해 일하는 주의 종이라면 교회는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고 환영하여 함께 교제함이 마땅한 일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바울은 로마 교회를 방문하기 원했습니다.

여러 곳에 다니며 전도하고 교회를 세우느라 여념이 없었을 바울 사도지만 기도할 때마다 로마교회 성도들을 위해 중보기도에 힘썼습니다. 오래 전 사무엘도 백성들의 요청에 따라 사울을 왕으로 세우고 일선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너희를 위해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중보기도가 힘든 사역입니다. 힘쓰고 애써서 기도하고 나면 몸살이 나려고 할 때도 있습니다. 몸만 고된 게 아니고 마음도 힘듭니다. 물론 보람을 느끼고 감사하고 기쁠 때가 더 많죠. 중보기도가 응답되어 잘 되는 것을 볼 때 처럼 기쁘고 감사할 때도 없죠.

중보기도가 필요한 이유는 사단의 세력을 대적하기 위한 것입니다. 가끔 교인들을 보면, 믿음으로 잘 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어 육신적으로 생각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믿음으로 권면하는 게 오히려 반발심만 불러올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함께 기도하고 주님 뜻을 구하고 믿음으로 잘해보겠다고 했는데 확 바뀐 겁니다. 그럴 땐 달리 해줄 게 없어요. 중보기도하는 게 최선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게 맡기는 거죠. 믿음을 세워주시든 책망이나 경고를 하시든 주님께 부탁해야죠.

오늘은 여기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교우 여려분, 우리는 모두 주님의 종입니다. 복음을 위해 택함 받은 일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믿어 구원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의 부름 받은 자녀 답게 삽시다. 로마교회 성도들은 교회당 안의 신자만이 아니라 세상 밖에 믿음을 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도 가까운 사람에게 믿음을 드러내 보이기 바랍니다. 그러면 믿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생겨날 겁니다. 그 때 하나님이 믿음으로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능력이 우리 교회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도록 기도합시다. 한 주 동안 성령의 인도아래 승리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