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예배

로마서12:1-2

오늘은 로마서 12장을 본문으로 예배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12장엔 예배 외에도 몇 가지 권면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우리는 주일 예배 뿐 아니라 매일 가정, 학교, 직장에서 우리 생활이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주중에는 하나님 없는 사람들처럼 살면서 주일에 교회 나와 예배드리는 생활을 계속하면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예배보다 생명없는 종교활동에 불과하게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로마서는 1장에서 11장까지는 교리적 가르침이고 12장부터 16장까지는 그 가르침을 삶에 적용하는 부분입니다. 적용부분의 첫번째 장인 12장은 1-2절은 몸을 산제물로 드리는 영적 예배에 대해, 3-13절은 몸과 지체의 관계를 생각하며 형제를 사랑할 것에 대해, 끝으로 14절-21절까지는 몇 가지 실제적 상황에 대한 지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1절부터 2절까지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2절의 중심 내용은 ‘거룩한 산 제사’, 또는 ‘영적 예배’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교우들에게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권면했습니다. 바울은 구약의 제사를 생각하며 이렇게 권면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흠 없는 거룩한 것이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영원한 속죄의 제물이 되신 이후에는 동물을 제물로 드릴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가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나가 예배 할 때 우리 몸이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지는 예배가 되게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리 몸이 거룩한 산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그냥 몸만 교회당에 옮겨놓지 말고 몸과 마음을 흠없이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과 태도가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삼가해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데 힘써야 합니다. 마음은 딴 데 가있고 몸만 와서 예배에 참석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주중에 집에서 학교나 직장에서 하나님 없는 사람들과 어울려 돈과 권세와 육신의 쾌락과 이 세상의 자랑과 영광 그런 것을 따라다니며 하나님이 나에게 기대하시는 바가 뭔지 생각할 겨를 없이 살다가 주일엔 교회 나와 또 자기 원하는 소원 이뤄 달라고 빌다 가는 것은 신령한 예배가 아닙니다.

크리소스톰(Chrysostom)은 몸이 산 제사가 되려면, 눈이 아무 악도 보지 못하게 하라, 혀로 상스러운 말을 못하게 하라, 손으로 아무런 죄를 행치 못하게 하라, 손은 자선을 배풀고, 입은 축복하고, 귀는 하나님 말씀을 경청하게 하라”고 말했답니다. 예배를 영어로 Service라고 합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예배로 번역한 헬라어는 λατρεια인데, 이 단어는 ‘하나님 섬기는 일’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9장 6절에는 이 단어가 제사장의 ‘섬기는 예식’의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예배는 단지 찬양 하고 말씀 듣는 것만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일 모두 다 예배입니다. 주일에는 교회에 함께 모여 의식으로 예배를 드리고 주중엔 흩어져 집에서, 학교 또는 직장에서 하나님 섬기는 삶을 살 때 그것이 거룩한 산 제사요, 영적인 예배입니다. 삶이 예배여야 하기 때문에 생각과 태도를 바르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불신자처럼 세속적으로 살면 삶은 예배가 될 수 없고 그런 사람이 주일에 교회에 나와 의식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그것은 하니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가 아니라 그냥 종교활동이 되는 것입니다. 이 점을 교우 여러분들이 심각하게 생각해주길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세대로 번역된 헬라어 αιων은 세속적 사상과 문화적 가치를 반영하고 있는 ‘시대정신’(Zeitgeist)을 가리킵니다. NIV 성경엔 이 구절이 “Don’t conform any longer to the pattern of this world”로 의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를 드리는 성도는 하나님 없는 세상 사람들처럼 생각하며 세상 사람들의 풍조에 따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유행하는 복장을 생각 없이 따라 입고 명품 가방을 둘러내고 다이어반지를 끼고 BMW 같은 고급 승용차를 타고 교회 나와 예배에 참석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될 지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그 다음 3절부터 13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부분의 중심 메시지는 ‘분수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3절에서 바울 사도는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이 대학, 또는 대학원을 다니며 많은 지식을 얻게 되면 그 지식은 겸손하게 만들기보다 교만하게 만들기 쉽습니다. 세상 지식의 수준이든 영적 수준이든 남보다 높다고 생각하는 순간 교만해집니다. 입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하면서도 맘 속으로는 그래도 내가 낫지 이럽니다. 그러니 평생 자기를 낮추는 노력을 하기 바랍니다.

사실 여러분이 대학이나 대학원을 나와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합시다. 자기 분야에선 남보다 전문적 지식을 더 갖고 있겠지만, 그 지식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더 잘 분별하고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인격이 더욱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 세상 지식은 그 자체로 영적 수준을 높여주지도 않고 인격을 성숙하게 만들어 주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교만하게 되어 하나님 보시기에 겸손할 때보다 더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공부를 많이 할수록 교만해지지 않게 자신을 더욱 낮추고 조심해야 합니다. 

영적 지식도 교만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사를 주어 남보다 재능이 있더라도 분수를 지키기 바랍니다. 그래야 주님의 교회에서 협력하며 일할 수 있습니다. 계시록을 보면 에베소 교회에는 자칭 사도라 하는 자도 있었고(계2:2), 두아디라 교회에는 자칭 선지자라는 자도 있었습니다(계2:20). 이들은 교만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만들고 사단의 종이 된 사람들입니다. 교만은 인생도 신앙생활도 실패하게 만듭니다. 몸에 여러 지체가 있는 것처럼 주의 몸인 교회에도 여러 일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의 일을 잘 하게 우리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십니다.

교회에서 일꾼을 배치하는 것인지는 은사가 기준입니다. 6절에서 8절엔 여러 은사 중에 예언의 은사, 섬기는 은사, 가르치는 은사, 권면과 위로의 은사, 구제하는 은사, 다스리는 은사, 긍휼의 은사가 나옵니다. 성경전체적으로 보면, 18가지 혹은 24가지 은사가 있다고 합니다. 은사와 직분을 연결해 생각해 볼 때, 목회자나 목자에겐 가르치는 은사와 다스리는 은사가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가르치는 은사나 다스리는 은사가 있는 사람에게 목사 또는 목자의 일을 하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 엡4장에 보면, 은사의 직분이 나오는데 헬라어로 보면 목사와 교사는 동일한 한 사람으로 나옵니다(엡4:11,12). 디모데에 대한 바울의 권면에도 읽고 가르치고 권면하는 일에 힘쓰도록 당부했습니다(딤전4:13).

그 다음 9절부터 21절까지 바울의 권면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여러 가지 당부를 했는데 다 살펴볼 수 없어서 몇 가지만 강조하겠습니다. 9절에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는 말씀부터 봅시다. 헬라어에 미워하다는 단어가 두 개 있습니다. μισεω는 마음 속으로 싫어하다는 뜻이고 στυγεω는 싫어하는 것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선 στυγεω가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가능한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지만 악에 대한 태도는 겉으로 드러나도록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악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해서 오해하게 하면 안됩니다. 예를 들어 요즘 이슈가 되는 동성애나 동성결혼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질서를 벗어난 악이기 때문에 싫어합니다.

그 외에 바울의 몇 가지 권면을 열거하면,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고 했습니다. 축복의 헬라어
ευλογεω는 좋다는 뜻의 접두사 ευ와 말하다는 동사 λεγω의 합성어로 좋게 말하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에게 좋게 말하는 것이 축복하는 것입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힘들고 슬퍼서 우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울어주는 게 큰 힘이 되죠. 같이 울어주면 이해 받는 느낌이 들고 또 내 편이라는 생각도 들어 힘이 됩니다.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화평하게 지내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이것은 가능하다면 모든 사람과 잘 지내라는 당부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먼저 화평을 깨뜨리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아무리 화가 나는 상황이라도 상대가 공격하기 전에 먼저 공격하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선으로 대하고 원수 갚고 싶을 때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겨두라고 했습니다. 상대가 먼저 악하게 나왔더라도 내가 악으로 갚으면 결국 똑같이 죄를 짓게 됩니다. 원수 갚는 것이라도 사람을 죽이면 살인이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징벌하시도록 맡겨야 합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노예로 팔아 모진 고생을 했지만 곡식을 사러 온 형들에게 선으로 대했습니다. 원한을 품고 살면 마음이 편치 않고 파괴적인 감정 때문에 인생을 망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원통하더라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며 마음의 평안을 찾기 바랍니다.

원수를 원수로 대하지 말고 먹이고 마시게 하라고 했습니다. 사실 이렇게 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선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숯불을 머리에 쌓아둔다는 말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성서시대에는 화로불이 불씨를 보존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불이 꺼지면 이웃 집에 가서 살아 있는 숯불 몇 덩이를 통에 넣어가지고 머리에 이고 운반했다고 합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숯불을 머리에 쌓아놓는 것은 친절을 배푸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악을 선으로 대할 때 악을 행한 사람이 수치를 느끼고 후회의 고통을 받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주일 한 두 시간 의식을 통해 드리는 예배보다 매일 우리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더 기뻐하십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우리 삶이 예배가 되게 합시다. 또한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들이 핍박하는 자를 축복해주고, 힘들어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주며, 선으로 악을 이기고 원수에게 먹을 것을 대접하며 가능한 모든 사람과 화평하게 지내며 선을 베풀기 바라십니다. 이런 경우엔 백마디 고백보다 사랑의 실천이 믿음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처한 상황에서 오늘 말씀을 적용하고 함께 모일 때 그 은혜를 나누며 축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