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 성패는 성령께 달려있다

로마서8:1-11

오늘은 로마서 8장 말씀에 근거하여 ‘신앙생활의 성패는 성령께 달려있다’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지난 주 로마서 7장에서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도 율법아래 신앙생활 하면 지쳐 쓰러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율법아래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성취하려고 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거듭난 후에라도 우리는 내 의지와 힘으로 모든 계명을 다 실행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기시는 것도 예수 믿는 믿음 때문이지 실제로 온전하게 살아서 의롭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겠다고 애쓰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함을 이미 얻었 것을 즐기며 살기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6장에서 율법 아래 있는 옛 사람이 죽으면 죄의 세력이 무력해진다고 말합니다. 죽은 사람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옛 사람이 죽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죄의 세력이 파괴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니 예수 믿고 거듭난 교우들은 여러분의 옛 사람은 이미 죽었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살기 바랍니다. 그러면 옛 사람에게 역사하는 죄의 세력이 현저하게 약화될 것입니다. 그래도 육신의 욕망과 죄의 세력을 이겨내기는 아직 부족합니다. 결정적으로 성령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에 초점을 맞춰 말씀하겠습니다.

먼저 바울 사도는 초반부에서 죄와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분리전략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육신의 법과 마음의 법입니다. 우리 육신에 남아 있는 죄의 본성은 율법을 근거지로 삼아 활동하며 우리가 범죄자가 되어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반면에 우리 속 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생명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니까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율법, 죄 이런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었다는 믿음을 가지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하루 하루 살면 그것이 승리의 길입니다.

바울 사도는 8장에서 육신에 대한 성령의 승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2절을 보면,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더 이상 정죄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 믿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죄의 형벌에 대해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구원의 소망만 있을 뿐입니다. 정죄가 없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 값을 대신 지불하셨고 또한 우리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 때문에 죄의 책임을 물을 수도 없으며 거듭나는 순간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만 해당되는 말입니다.

정죄가 없다는 것은 태도나 행위에 근거한 판단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사실에 입각한 주장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도 육신에 죄의 본성이 남아있고 때로 연약하여 실수로 죄를 범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경우 성령께서는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가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따라서 걸음마를 시작하는 어린이가 넘어진 것처럼 아직 연약하여 죄의 유혹에 넘어가 범죄했지만 회개하고 다시 일어서려고 노력하는 경우와 육신의 욕망을 사랑해 의도적으로 죄를 범하는 것과는 구별해야 합니다. 육신의 욕망을 사랑해 습관적으로 계속 죄 가운데 사는 것은 사망에 이르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난 행위만 보지 말고 마음 속의 생각과 의도를 살펴서 죄악을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비록 육신에는 악한 성품이 남아 있더라도 육신의 욕망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거듭난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싶은 마음과 또 힘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엄밀하게 말해 속 사람의 의지나 노력과도 구별되는 것입니다. 4절에 ‘따라 행하는’으로 번역된 헬라어 περιπατεω는 ‘자신의 행위나 태도를 규제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행위나 태도가 악한 본성의 지배아래 있지 않고 성령의 지배 아래 있도록 자신의 행위나 태도를 규제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마음과 행동은 상호작용을 합니다. 악한 생각은 악한 행동으로 이어지고, 악한 습관에 빠지면 악한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5,6,7절은 그런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욕망에 지배되어 있는 사람은 육신의 쾌락만 생각합니다. ‘생각한다’의 φρονεω는 의도적으로 어떤 것에 마음을 두는 것을 말합니다. 거듭나지 못한 옛 사람은 습관적으로 늘 악한 본성의 지배를 받으며 육신의 쾌락을 주는 죄의 대상들에 마음을 둡니다. 반면에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생명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평안을 누립니다. 이 두 가지 방향은 성령에 의해 크게 좌우됩니다.

성경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는 순간 성령이 들어와 함께 거하신다고 가르칩니다. 성령님은 속 사람에게 역사하여 죄를 깨닫아 회개하고 예수 믿어 거듭나게 도와주며, 거듭난 후에는 그 사람 안에 거하시면서 하나님 뜻대로 살고 싶은 마음과 힘을 주십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의 성패는 성령께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성령의 내주 여부는 거듭남에 달려 있으니 거듭남 없는 신앙생활은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간증을 하면서 우리가 믿음에 있는가 서로 확증하고 아니면 거듭나도록 복음전하며 기도해줘야 합니다.

10,11절엔 인간의 영과 성령에 대해 언급되어 있습니다. 성경엔 인간이 몸과 영과 혼(또는 영혼)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식을 갖게 해주고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는 것은 영이 하는 일입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영적으로 죽은 상태로 태어납니다. 이것은 영의 기능이 정지되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힘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찾지도 않습니다. 예수 믿고 거듭나 성령이 내주하면 그 때 비로소 영의 기능이 작동하여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생기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14-17절에서 바울 사도는 성령을 ‘양자의 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금 전 예수 믿고 거듭나면 성령이 들어와 계신다고 말했는데, 바로 이 성령이 계시는가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자녀 자격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성령을 ‘양자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로마사회는 양자제도가 있습니다. 양자는 양부의 신분과 재산을 승계하여 가문의 상속자가 되고 사회적 지위도 얻습니다. 따라서 바울 사도는 우리가 성령을 통해 하나님 자녀의 신분과 특권을 얻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 자녀임을 증거해줍니다. 그 결과 우리에게 하나님 자녀라는 의식도 생겨납니다. 이것은 단지 주관적 고백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도 자신이 예수 믿고 구원 얻었다고 고백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중에 진짜 거듭난 후 전에 가짜로 믿었다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26,27절에는 성령의 돕는 사역이 나옵니다. 성령은 우리 연약함을 도와줍니다. 성령이 돕는 방식은 주도권을 잡고 주장하기보다 성도들이 자신의 영적 상태를 분별하고 극복하도록 상담자나 코치의 위치에서 도와줍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다 알아서 하라고 하면 안됩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해나가야 합니다. 선수가 힘들다고 코치보고 대신 운동장에 들어와 뛰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28절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고백이 나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든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 결과적으로 선을 이루게 해주신다고 말합니다. 살다 보면 뜻대로 안 되는 일도 있고, 질병이나 사고나 실패나 재난도 만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최종적으로 그 모든 일을 통해 선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선이 꼭 나에게 유익한 것이라고만 생각해선 안됩니다. 나에겐 손해지만 하나님께 선이 되어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자녀인 나에게도 선이 되는 경우도 생각해야 합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만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죄인을 불러 구원하시는 과정과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29,30절에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는 과정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미리 아신 자들을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도록 미리 정하시고 때가 되었을 때 그들을 불러 예수 믿게 하여 의롭다고 인정해주고 마지막엔 영광스럽게 변화시켜 하나님 자녀의 복을 누리게 해주십니다. 부르심은 성령이 언제 믿음을 주시는가에 대한 의문을 풀어줍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으로 부르실 때 믿음이 생겨납니다. 지독하게 안 믿고 버티는 사람에 대해서도 포기하지 말고 중보기도합시다.

끝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살펴보고 마치겠습니다. 35절에는 ‘그리스도의 사랑’, 39절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성도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곧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처한 상황에 따라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히 느끼기도 하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예컨데 환란을 당할 때, 실패했을 때, 힘들 때, 하나님 사랑을 의심하기 쉽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자녀인 성도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변함없습니다. 그 근거는 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바울 사도처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치 않는 수준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한 주 동안 성령의 인도아래 평안을 누리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