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섬김

로마서15:22-33

오늘은 로마서 15장 가운데 22절부터 33절 말씀을 중심으로 ‘사랑의 섬김’에 대해 하나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설교시간에 먼저 성경을 읽는 것은 설교가 설교자의 생각이나 주장이 아니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설교자가 말을 좀 더 잘하고 못하거나, 가르치는 재능이 좀더 좋고 나쁠 수는 있지만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그 내용을 쉽게 해석해주고 삶에 적용하도록 격려한다는 차원에서 어느날 설교는 더 좋고 나쁜 것은 없습니다. 설교는 들으라고 하는 게 아니고 실천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설교를 주님 말씀으로 받아서 순종하는 사람이 천국에서 복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22절부터 33절까지 중요한 내용들을 살펴봅시다. 22절에서 바울은 로마교회에 가려고 했지만 ‘여러 번 막혔다’고 말합니다. 막혔다는 동사는 미완료과거형이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바울이 서신을 쓸 때까지도 방해가 계속되고 있어 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모든 것이 형통한 것은 아닙니다. 사단의 방해가 있을 때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며 참고 이겨내야 합니다.

23절의 ‘이제는’의 시점은 3차 전도여행이 끝나갈 때입니다. 로마서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 말기에 고린도에서 기록했다고 합니다(행20:1-6). 이때의 정확한 연대는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기 직전인 주후 57년의 후반기나 58년의 초반기쯤으로 볼 수 있습니다. 23,24절을 보면, 바울은 3차 전도 여행이 끝날 무렵 기회가 되면 스페인으로 가서 전도하는 동안 로마도 방문하고 싶었지만 그 때는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바울은 2,3년이 지난 60년에 로마를 방문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모함에 대해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압송되었는데, 이것은 로마에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행23:11).

24절에 ‘약간의 만족을 얻은 후 그리로 보내줌을 바란다’는 말은 로마 교회가 바울의 선교활동에 필요한 필수품을 준비하는데 물질적 도움을 줄 것을 기대한 말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일하는 선교팀을 위해 로마교회가 후원하는 것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고, 선교를 후원하는 일은 단지 바울 개인을 돕는 구제의 차원을 넘어 복음에 동참하는 기회라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래서 로마 교회가 후원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정중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전도와 선교,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분들을 돕는 일에 동참해 합니다. 내년부터는 우선 적은 금액이라도 우리와 연관이 있는 선교사를 후원하는 일을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여러분이 선교헌금에 동참해야 합니다. 전도와 선교는 헌금이 가장 우선적으로 사용되어야 할 곳 중에 하나입니다. 성경의 가르침과 예를 따르면 헌금은 복음을 위해 일하는 사역자의 생활 지원과 고아나 과부와 같이 어려운 교우들의 생계 지원과 전도와 선교 활동과 교회 운영에 사용해야 합니다.

25절에 ‘성도 섬기는 일’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서 ‘성도 섬기는 일’은 물질적 도움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26절을 보면,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얼마를 동정했다고 나옵니다. ‘동정’이 헬라어로는 ‘코이노니아’인데 이 단어는 친교, 교제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려운 교인들과 물질을 나누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친교요 교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 교회는 친교를 강조하는 셀교회입니다. 여러분이 매주 목장 모임을 하면서 목장멤버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 겁니다. 각 목장은 셀 안의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차적 통로입니다. 아직 우리가 학생이나 청년들로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적은 것을 나눌 수 밖에 없겠지만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마음을 나누고 물질을 나누는 것이 셀입니다. 셀원들은 목장 밖에 교인보다 먼저 셀 안에 있는 지체를 도와주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그 다음 셀 차원에선 감당할 수 없을 때는 교회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겁니다.

본문에는 바울이 연결고리가 되어 교회 차원에서 다른 교회를 돕는 사례가 나옵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금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예루살렘교회에 전달했습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의 권면으로 예루살렘교회를 위해 구제 헌금을 했을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는 십일조의 십일조만큼을 사랑의 헌금으로 드려 매달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는 섬김의 방안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섬기는 일에 동참하기 바랍니다. 특별히 누군가를 돕기 원할 때는 지정해서 헌금하면 그 사람에게 전달됩니다.

물질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은 나중에 수입이 많이 생겨 경제적으로 여유 있을 때 하려고 하면 거의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입이 조금 많아지면 써야 할 곳은 그보다 더 많아지는 게 현실입니다. 어려운 사람과 나누는 일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면 결국은 하기 어렵습니다. 연봉이 7, 8만불 되면 여유가 있을 것 같죠? 그런데 이 정도 버는 분들 말을 들으면 매달 겨우 살거나 마이너스라고 합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수입이 많든 적든 10분의 1은 하나님께 드리고 100분의 1은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것을 습관으로 삼아야 합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 매달 수입의 100분의 1을 모으면  매달 몇 백 불 될 겁니다. 그 돈은 누군가 어려운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돈을 사용하는데도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좋습니다. 저는 십일조와 사랑의 나눔, 기본생활비, 자녀교육비, 문화비, 노후대책비 순으로 정했습니다. 또한 교회에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도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하고 참고합니다. 고아와 과부의 지원, 싱글 맘 후원, 고학생지원, 실직자나 병자 지원, 기타 도움이 필요한 교우들 순서입니다.

27절에는 신령한 것으로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육신의 것으로 신령한 도움을 베푼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양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해주고 기도해주며 영적으로 돌봐주는 목자를 물질로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목자로부터 말씀과 기도로 섬김을 받습니다. 신령한 것으로 섬김을 받았으니 육신의 것으로 여러분 목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양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느 교회를 다니든 십일조로 교회를 섬기고 사랑의 헌금으로 어려운 교우를 섬기고 여분의 수입으로 가끔 목자도 섬기고 그러길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말하면서 재물이 아까워 그 사랑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지 않는다면 결국 주님의 사랑을 배신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영적 지수는 사랑의 나눔과 비례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다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이라 구원의 능력이 없다고 했습니다. 돈을 아끼려고 바리새인이 되면 안됩니다. 말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바리새인처럼 악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수입이 없는 학생도 여러분 용돈 중에서 십일조하고 사랑의 나눔을 하면 됩니다. 십일조와 사랑의 나눔은 예수 믿은 직후부터 해야 평생할 수 있습니다.

물질로 남을 돕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어느날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찾아와 영생을 얻으려면 내가 뭘 더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자기 나름으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는 청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 가난한 자에게 재물을 나눠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자 재물이 많이 근심하며 주님을 떠났다고 합니다(막10:17-22). 가난한 교우들을 위해 재물을 나누는 것은 참 사랑의 표지입니다. 삭개오는 주님께서 시키지도 않았지만 자원해서 자기 재물 절반을 가난한 자를 위해 나누고 혹시 누구에게든 부당하게 행한 경우는 4배로 갚아주겠다고 했습니다(눅19:1-10). 초대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은 자기 재물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고 어려운 사람과 공용했습니다(행2:44,45:4:32). 바나바는 밭을 팔아서 가난한 성도들을 도와주었다고 합니다(행4:37). 우리 교회도 이렇게 사랑으로 섬기는 교인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주는 것은 복받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고 목자를 섬기면 목자로부터 사랑을 받고 교우를 섬기면 교우들로부터 같은 대접을 받게 될 겁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된 것입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인 동시에 은혜의 달이기도 합니다. 부모에게, 목자에게, 은사에게, 고마운 분들을 물질로 섬기기 바랍니다. 어렵다고 섬겨본 적이 별로 없는 분들은 이번 기회에 꼭 물질로 어려운 사람을 섬기는 기쁨을 누리기 바랍니다. 섬기는 분들께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