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세에 굴복하라

로마서13:1-7

오늘은 로마서 13장을 본문으로 ‘권세에 굴복하라’ 이런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설 교는 개인상담과 달라서 특정 개인을 염두에 두고 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특히 강해 설교는 그 날의 본문 내용에 한정해 우리에게 주는 삶의 교훈을 강조하고 적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설교를 듣는 여러분 마음을 감동해 개인적으로 적용하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설교를 들을 때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는 태도가 좋습니다

지난 주일 살펴본 것처럼 바울 사도는 12에서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13장에서는 갑자기 주제가 바뀌어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할 것’에 대해 말했습니다. 주제가 갑자기 바뀌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로마교회 안에 있는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의 통치권에 대한 반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나라를 잃고 외국 땅에 살고 있더라도 신명기 17장 15절, ,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으로 할 것이요 네 형제가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이 구절을 아는 유대인이라면 이방인인 로마 당국자의 권세에 굴복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 공권력에 저항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정부에 대한 자신들의 관계와 의무를 잘 이해하고 순응하여 불필요한 곤경에 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위에 있는 권세에 어떻게 처신 해야 할 것인지 지침을 준 것 같습니다.

1절부터 봅시다. 바울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하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에 있는 권세들’은 로마제국의 통치자들을 의미하고, ‘굴복하라’(υποτασσω)는 말은 군사들이 장군의 명령을 따른다는 의미의 군사용어입니다. ‘정하신 바’의 헬라어 τασσω는 임명하다, 할당하다의 뜻입니다. 바울 사도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 이렇게 했다면 권세에 아부하는 어용 선교사로 오해 받았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바울은 확립된 권세에 순응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께서 강조한 위의 권세들은 법의 집행관을 의미하며 이들의 지위는 하나님에 의해 정해졌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통치력으로서 법의 권위를 의미하는 것이지 그 직임을 수행하는 사람들까지 하나님이 정하여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이 권세자들을 존경하고 따르라고 한 것은 그가 법으로 정한 공권력을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로마제국의 통치권도 하나님에 의해 주어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바울은 공권력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 것처럼 보입니다. 로마 제국이 유대를 정복하고 식민지로 만든 상황에서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로마 통치권에 순복하라고 했습니다. 당시 로마교회는 다수의 이방인 그리스도인과 소수의 유대인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 교회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의 통치권력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대한 유대인의 감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권세에 굴복하는 문제를 언급할 필요를 느낀 걸로 봐서 로마교회는 로마당국의 공권력에 순응하는 문제에 대해 약간의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로마 당국에 대한 저항보다 굴복하라고 권했습니다.

바울의 입장은 반혁명적인 것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이 유대를 무력으로 식민지로 삼고 있는 상황이지만 바울은 그리스도인에게 로마 당국자의 공권력에 순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의 가르침에 따르면 정치적 독립을 목적으로 테러 같은 것은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준법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공권력을 행사하는 자가 누구든 법에 따라 정당하게 공권력을 집행한다면 그 권세에 굴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공권력이 하나님의 법을 위반하고 배신할 것을 강요할 경우는 불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만일 공권력이 살인을 명령할 때도 저항해야 할 것입니다. 공권력이 신앙과 양심에 위반되는 것을 요구할 때는 거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정의를 행하고 질서를 유지함으로써 하나님을 섬겨야 할 공권력이 자기 직분을 벗어나 정당성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2절을 봅시다. 여기서 바울은 권세를 거스리는 것을 하나님의 명을 거스리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보고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바울은 권세를 하나님이 정하신 것으로 보기 때문에 권세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자는 하나님께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라 스스로 심판을 취하는 것이 된다는 겁니다. 여기서 심판은 투옥이나 사형 같은 공권력에 의한 제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심판을 받지 않는 성공한 쿠데타 같은 경우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해야 할것입니다(Danny주석참고).

3,4절은 바울이 기능적 측면에서 권세들에 순응하라고 말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공권력을 집행하는 관원을 일컬어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관원을 하나님의 사자라고 말한 것은 칼이 상징하는 공권력이 악을 막고 선을 증진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입니다. 권세를 가지고 정의를 행하고 치안을 유지하여 무정부적 혼란을 방지하는 기능을 한다는 전제하에 그리스도인도 그 권세에 굴복할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일부 독재국가에서 보는 것처럼 위정자들이 권력유지를 위해 국민들의 인권과 생명을 위협하는 등 부당하게 공권력을 남용하는 경우는 국민적 저항권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관원을 하나님의 사자라고 표현한 것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처럼 국가에서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기타 공무원들의 경우, 구원받은 유무와 상관없이 정의를 행하고 치안을 유지한다는 차원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기독교 국가든, 이방 나라의 국가든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하나님은 국가를 허용하셨기 때문에 법을 집행하는 관원들(공무원)은 하나님을 뜻을 받든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한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구원과는 상관없습니다. 구원은 관원이든 아니든 예수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칼은 공권력을 상징하며 악에 대한 처벌의 수단으로 바울의 가르침은 사형제도를 지지하는 편으로 보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국가와 관계에 있어서 성경의 가르침 외에 또 다른 지침은 양심입니다. 바울 사도는 5절에서 공권력의 처벌 뿐 아니라 양심을 위해서도 법을 지키고 세금을 잘 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국가에 세금을 납부할 의무가 있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 세금을 납부하는 문제도 마음은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면 자기나라를 무력을 빼앗아 지배하는 자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세금을 납부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능한 안 내든지 내더라도 적게 속여 내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안았을 것 같습니다. 일제 치하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겁니다. 그런데 바울은 양심적으로 세금을 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국가에 내는 세금은 안 낼 수만 있으면 안 내려는 게 사람들의 심리입니다. 조세 피난처에 비밀 계좌를 만들어 돈을 숨기는 사람도 있고, 세금을 덜 내려고 국적을 포기하고 러시아로 이민 가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세금을 적게 내려고 가능하면 이런 저런 이유로 실 소득을 줄이고 그런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양심에 거리낌 없이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 그리스도인 답습니다. 어찌보면 세금을 조금 더 내서 수입이 적은 사람들을 위해 국가에서 복지 혜택을 베풀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세금을 조금 더 내는 것을 아까워하지 맙시다.

오늘은 정한 법에 따라 집행되는 공권력에 굴복하고 세금을 잘 납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을 배반케 하거나 양심에 위반하는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닌 한 그리스도인은 법에 따른 공권력을 존중해야 합니다. 위에 있는 권세는 질서를 유지하고 악을 방지하기 위해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 재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정직하게 세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입니다. 우리는 법질서를 잘 지키고 소득에 합당한 세금을 납부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