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그리스도에 대해 들을 때 생긴다

로마서10:1-15

 지난 주엔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의 선택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 죄인이 되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죽어야 할 운명에 처했지만, 하나님은 그 중에서 어떤 사람들에게 은혜를 배풀어 구원으로 선택하시고 믿음을 주어 예수 믿게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믿음을 근거로 의롭게 봐주시고 지난 날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구원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구원으로 선택하시는 근거는 언약과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성경은 이삭과 야곱을 통해 그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 대신에 이삭을 아브라함의 후사로 정했습니다. 이스마엘과 이삭 모두 아브라함의 친 아들이었지만 어머니가 달랐습니다. 이삭은 언약을 받은 사라의 아들이고 이스마엘은 사라의 몸종 하갈의 소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갈이 아니라 사라와 언약을 맺었기 때문에 이스마엘이 먼저 태어났어도 사라의 아들 이삭이 아브라함의 후사가 된 것입니다. 그 다음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의 경우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을 보여줍니다. 에서와 야곱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모두 같습니다. 하나님은 둘 다 태어나기도 전에 동생 야곱을 언약의 후사로 정했습니다. 인간적 조건을 따른다면 형인 에서가 후사가 되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선택이 인간적 조건을 따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하나님은 태어나기도 전에 동생 야곱을 후사로 정했습니다.

오늘은 로마서 10장을 중심으로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것의 의미와 전도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선택받은 사람이 예수 믿고 구원얻기 위해서는 누군가 예수님에 관해 전해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으로 선택한 사람을 예수 믿어 구원얻게 하려고 해도 그 사람이 예수님에 대해 들을 수 없다면 어찌 믿겠습니까? 구원은 협동사역으로 이뤄지는데, 먼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구원으로 선택하시고, 누군가 그에게 예수님에 관해 전해 줄 때, 성령께서 그 사람 마음에 믿음을 주어 고백하게 합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에 대해 들을 때 생겨난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3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과거 경험에 근거하여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증거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며 자기 의는 율법의 행위, 즉 공로로 자기 의를 세워 의인으로 인정받으려는 것입니다. 증거는 증인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인데, 바울도 예수님 만나기 전에는 바리새인으로서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 자기 의를 세워 하나님께 인정받으려고 했기 때문에 당사자 입장에서 증거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4절의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해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는 구절이 무슨 뜻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이 구절에서 ‘마침’의 헬라어는 τελοs 입니다. 텔로스는 어떤 사물이 존재하기를 그치는 종착점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율법이 존재하기를 그치는 종착점이란 뜻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선행을 통해 부모와 선생님으로부터 인정받는 분위기에서 교육받고 자랍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선행을 통한 자기 의로 하나님께 나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율법으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에게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의롭다함을 얻은 사람은 이미 의롭다함을 얻었기에 의롭다함을 얻으려고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율법의 목적이 이미 성취된 거죠.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의 종착점인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이 폐기되었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인터넷에서 Larry King 좌담 동영상을 보니, 어떤 목사님이 천국을 가는데 인간의 선행은 상관없다고 말하자, 어떤 사람이 그러면 더 악한 사람은 천국 가고 더 착한 사람이 지옥갈 수도 있느냐고 반문하자 그렇다고 대답하니 말이 안 된다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걸 봤습니다. 그 때 어떤 여자분은 예수 믿는다고 천국가는 게 아니고 예수는 남을 위해 산 분이니 예수님처럼 남을 위해 살면 예수를 믿든지 안 믿든지 예수를 따르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걸 봤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자기 의를 세우느라 하나님의 의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죄인된 인간이 행하기에 불가능한 어떤 과업을 성취해야 의롭다함을 얻고 구원에 이른다고 한다면 인간에게 구원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6-8절 말씀은 그러니 그런 주장을 하지 말라는  취지의 말씀입니다. 구원을 확신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개인적 임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하늘에 올라가 메시야를 모셔 내리려고 하거나 음부에 내려가 올려 오시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죄인이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얻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인데 이것은 사람들이 전하는 말씀을 통해 이뤄진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얻는 방법도 구원에 대한 확신을 얻는 방법도 말씀입니다. 복음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지, 꿈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거나, 환상 중에 천국에 갔다 왔다거나, 방언을 말한다거나, 어떤 능력을 행한다거나 그런 것에 있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이 심리적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객관적인 구원의 증거는 될 수 없습니다. 구원의 객관적 증거는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는 신앙고백입니다. 바울은 8절에서 구원에 이르는 지식은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9,10절에서 추가로 ‘구원을 획득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9,10절은 제가 복음을 전할 때 마지막 결신의 단계에서 언제나 인용하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에는어떻게 하면 구원 얻게 되는지 설명이 나옵니다. 구원 얻기 위해서는 첫째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둘째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라고 합니다. 믿지 않으면서 입으로 고백한다고 소용없습니다. 마음으로 믿는 바를 입으로 고백하고 시인해야 참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따라서 고백시키는 것은 삼가해야 합니다.

예수를 주로 시인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 보다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의 헬라어 Κυριοs는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켜 사용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다음 헬라어 Ιησουs는 히브리어 ‘여호수아’의 음역으로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것은 예수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동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얻지 못합니다. 하나님으로서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는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한 유대인들이 이렇게 동의할 수 있었겠습니까? 또 로마 황제를 주, 큐리오스로 고백하는 이방인들도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것이 쉬웠겠습니까? 바울 당시에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이 생기지 않고는 예수를 하나님이며 죄인을 구원하시는 분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것은 인간의 이해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믿음의 선물을 받은 사람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런 과정을 통해 죄인을 부르시며 구원하십니다.

그 다음 11절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봅시다. 먼저 ‘누구든지’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지 봅시다. 11,13절에서 누구든지 다음에는 수식어가 따릅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는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자"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NIV를 보면, "anyone who trusts in him"," anyone who calls on the name of the Lord" 여기서 anyone은 아무 조건 없는 everyone이 아니라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예수를 믿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는 말은 거절당하지 아니하리라는 뜻입니다. 헬라어 καταισχυνω는 ‘거절당하는 수치’를 의미합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에서 예복이 없다고 쫓겨나 거절당하는 수치를 당한 사람들의 비유를 생각해보세요.

바울이 예수 믿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차별 없이 다 구원얻는다고 말한 이유는 유대인들이 자기들만 구원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보면, 로마 백부장 고넬료 가족이 구원얻은 사건을 계기로 베드로가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구원을 배풀어주셨다고 말할 때 유대인들은 처음엔 그걸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이 방언을 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방언을 성령이 임한 결과라고 생각한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성령을 받게 해주셨다는 사실 앞에 마지못해 이방인의 구원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외에 흩어져 거주하던 유대인들은 아직도 이방인은 구원에서 제외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구원역사에서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의 차별은 없어졌고 예수를 주로 믿느냐에 따라 결정되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하나님으로 구세주로 믿으려면 누군가 왜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이시며 구원자인지를 전해줘야 합니다. 예수님이 살아있는 동안 무슨 말씀을 하셨고 어떤 이적을 일으켰으며 또 왜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는지 그 이야기를 전해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구원으로 택한 사람이 그리스도에 대해 들을 때 마음에 믿음이 생겨나게 해줍니다. 그래서 전도자가 필요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하니까 그 발이 복된 겁니다.

여러분 발이 복되게 하길 바랍니다. 술집에 드나드는 발은 복된 발이 아닙니다. 복음 들고 나가는 발이 복됩니다. 이것은 선교사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도 예수님에 대해 듣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해외로 나가 전도하기 전에 UW켐퍼스에서, 아마존에서, 가페에서 먼저 그리스도를 전합시다. 심지어 여러분 목장에서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 세대의 택함 받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할 사명이 있습니다. 한 주 동안 여기 저기 복음들고 나가 그리스도를 전하는 복된 발걸음이 되길 축원합니다. 다음 주엔 누구든 전도에 대해 간증하는 사람이 나오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