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자신이 부인되어야

 마16:21-28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따르는 게 힘들다고 느끼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등에 짐을 지고 산을 올라가야 한다면 당연히 힘이 듭니다. 그러나 차를 타고 언덕을 내려간다면 힘들 까닭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믿어 구원의 감격과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알고 성령의 능력가운데 산다면 주님 따르는 게 즐겁고 기쁘고 행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따르기가 너무 힘들다면 은혜와 성령이 아닌 율법과 의지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첫 단계는 먼저 자신이 부인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따르기 원하는 사람이 먼저 해야 할 두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먼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논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연관이 있습니다. 먼저 자기를 부인한 사람이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주님을 따라가고 싶은데 십자가를 지는 것은 힘들어 안 되는 이유는 자기를 부인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위한 인생 목적과 계획이 있는 사람은 주님이 맡겨주시는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기 어렵습니다.

사람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의지가 아니라 은혜와 믿음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의 의도는 인간이 자기 의지로 자기를 부인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어떻게 해야 가능한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기 부정이 된 사람만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자기 부정이 되지 않으면 십자가를 지지 않고 주님을 따라가려고 하거나, 중간에 십자가를 벗어버리게 되거나 주님을 따라가는 것을 포기하게 될 겁니다.

베드로 사도를 예로 들어봅시다. 베드로는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다가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한 분입니다. 주님께 대한 헌신과 충성에 대해 베드로 사도를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베드로 사도 역시 자기 부인이 안되었을 때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예수님이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잡고 그렇게 하지 말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께서 언제 확실하게 자신을 부인하게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직전까지도 자신을 다 버리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이 로마병사에게 체포 당해 대제사장 앞에서 신문 받는 현장에서 베드로는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자기 인생에 대한 미련이 예수님을 부인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이것은 아직도 자기 부인이 안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자기 유익과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희생하고 손해 봐야 하는 상황에선 주님을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목자로 섬기는 삶은 먼저 자기를 부정해야 가능합니다. 하고 싶은 걸 다하면서 주님을 따르기는 어렵습니다. 사람이 시간이나 능력 때문에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습니다. 학교 다니고 직장 다니고 아이 키우면서 목자일까지 하기는 좀 무리라고 생각이 듭니다. 목자 일을 하려면 한 두 가지를 포기해야 할 겁니다. 제 생각엔 자기를 위해 살려는 마음, 자기를 위해 하는 일을 포기하고 복음과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일을 생각치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책망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과 자기 일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나눈다면 여러분은 어디에 속합니까? 우리 늘푸른교회는 어느 쪽에 사람이 더 많을까요? 목사나 목자는 말할 것도 없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려면 먼저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 부인은 인간적 의지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잘 믿어봐야지 이런 수준으로는 세상 성공의 유혹 앞에 너무 쉽게 넘어지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선택했다가 철저하게 실패하든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든지 뭐 좀 특별한 은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신앙생활도 이것도 저것도 아닌 왔다 갔다하면서 가는 것 같습니다.

십자가는 적당한 타협이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죽든지 주님과 상관없는 구경꾼이 되든지 선택을 강요합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철저하게 굴복하고 이기적인 삶을 끝장낼 것을 요구합니다. 안 그러면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옛 사람, 즉 아담의 본성이 멸망당하는 곳입니다. 십자가에는 더 이상 나를 위한 인생은 없습니다. 십자가에는 세상의 성공과 보상도 없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나를 위해 살던 인생을 포기하고 주님을 위해 살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에는 세상의 어떤 성공도 보상도 기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천국 복음에는 세상적으로 잘되고 성공하기 위해 예수 믿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 예수 믿고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전부인 그런 교회생활은 끝내야 합니다. 현재의 기독교는 신앙성경의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떠나 있습니다. 우리도 오랜 동안 이런 교회에서 생활해왔기 때문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찾는 이유와 기도 제목들만 살펴봐도 잘못을 쉽게 발견할 것입니다.

예배의 일차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예배자인 우리가 위로 받고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 우선순위가 바뀌어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자들이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구원받은 사람은 은혜 받기 위해 교회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기 위해 와야 합니다.   

주를 위해 바울처럼 고난을 많이 당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는 골로새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골로새교인들을 위해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고 말했습니다. 교회를 위해 수고하고 고난 받는 것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바울과 같이 되기를 사모하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이 주님의 나라에서 복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