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이 올 때를 대비하자

야고보서1:1-4, 12-19.

 지난 번에 로마서를 중심으로 10여회에 걸쳐 말씀을 전했습니다. 오늘부터 몇 차례 야고보서를 중심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로마서는 믿음을 강조하고 야고보서는 실천을 강조하기 때문에 서로 보완적 관계에 있습니다. 서로 대립된다고 볼 게 아니라 신앙생활이 그런 것처럼 믿음과 그 믿음의 실천 이렇게 함께 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서에 이어 야고보서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저자와 시대배경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께서 기록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야고보는 자신을 사도로 칭하지 않고 그냥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신약성경엔 4명의 야고보가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에도 두 명의 야고보가 있습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小야고보)와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大야고보)입니다. 그리고 세번째 인물로 야고보서의 저자로 알려진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가 있고, '작은 야고보'도 등장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를 동일인으로 보는 반면 개신교회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12제자에 속했지만 그의 행적은 거의 알려진 게 없습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사도 요한과 형제였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동생 요한과 함께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잡다가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제자가 된 인물로 불 같은 성격 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천둥의 아들’ 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막3:17)눅9:54). 그는 44년경 헤롯 아그립바 1세에 의해 체포되어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는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동명이인의 친척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마13:55), 또는 예수님의 동생(갈1:19)으로 불렸습니다. 신약성서에서는 그에 관한 언급이 별로 없습니다. 전승 자료에 따르면, 야고보는 어려서부터 신앙심이 두터워 엄격하고 경건한 수양 생활을 했기 때문에 고기와 술을 일절 입에 대지 않았고, 긴 겉옷과 망토만 몸에 걸치고 맨발로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침례 요한은 연상시킵니다. 그는 오랜 기도생활로 무릎이 낙타의 발바닥처럼 되었고 유대인으로서의 율법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잘 준수하였다고 합니다.

야고보는 어린 시절부터 예수님과 매우 가깝게 지냈다고 하는데 나중에 70인 제자 중에 한 사람으로 부름받았습니다(눅10:1-20).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는 사도들과 예루살렘교회로부터  신앙과 리더쉽을 인정받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 2:9에서 "기둥으로 인정받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여기서 야고보는 사도 베드로와 요한과 동급으로 언급하며 교회의 기둥이라고 했습니다. 안디옥교회에서 할례가 문제가 되었을 때 사람을 보내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자문을 구할 때 예루살렘교회가 그 문제로 교회회의를 열어 논의했는데, 그 때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가 의장 역할을 했습니다(행15:13).

예수님 형제 야고보는 AD 62년 네로황제의 박해로 총독 안나스의 손에 순교당했다고 전해집니다. 야고보서는 순교하기 직전 AD 60년 전후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야고보서의 수신자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로 되어 있습니다. AD36년 스데반의 순교 사건을 계기로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가 심화되어 많은 그리스도인 유대인들이 베니게, 구브로, 수리아의 안디옥 등지로 흩어졌습니다. 야고보는 이런 지역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믿음의 시련으로 고난당하는 것을 기뻐하며 견디라고 권면했습니다.

야고보서는 설교문 혹은 설교체 권면에 가깝습니다. 야고보서는 신약성경 그 어느 책보다 더 명령법 어조가 많이 나오고 대부분 내용이 설교적 권면입니다. 그러니까 교리적 논술보다 설교적 권면의 말씀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야고보서는 크게 다섯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서로 논리적 전개과정은 없습니다. 심지어 일부 문단 속에서도 논리적 연결없이 이 주제에서 저 주제로 넘나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본문 중에도 그렇습니다. 2절에서 시험에 대해 말하다가 5-8절은 지혜를 구하라고 하다가 또 9-11절에서는 겸손에 대해 말하고 12절에 가서는 다시 시험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2,3절에서 여러 가지 시험과 믿음의 시련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시련 가운데 있으면 고난이 따릅니다. 고난이 올 때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과 관계를 더욱 바르게 하는 기회로 삼으면 고난이 오히려 유익하고 복을 받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믿음의 시련가운데 있는 분들은 하나님 또는 주변 사람을 원망하지 않도록 마음을 잘 다스리며 인내하고 기도하기 바랍니다. 고난 당할 때는 힘들어도 지나고 나면 오히려 복이 될 수 있습니다. 고난이 죄를 멀리하게 만들고 예수님을 본받게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고난이 오는 이유를 생각하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1)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필요해서 그 통로로 고난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침례요한 같은 사람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2)나쁜 가정환경 때문에 믿음의 시련으로 고난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난, 부모의 이혼, 불신자 가정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3)사단의 공격 때문에 당하는 고난도 있습니다. 가정에서든 국가로부터든 오는 박해와 핍박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 다음엔 4)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초래되는 고통이 있습니다. 불신자와 결혼, 돈을 따라가다 실패하는 등 욕망이나 욕심으로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 중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는 것이 야고보서의 지적입니다. 마지막으로 5)살다 보면 이유를 모르는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자연 재난, 타인에 의한 교통사고, 사기 당하는 것, 질병 등이 여기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연령에 따른 인생의 시기에 따라 고난을 초래하는 상황이나 문제도 다를 수 있습니다. 청소년기엔 가정환경, 부모, 친구들로부터 고난 당합니다. 청년기엔 이성교제, 학업, 취업 등의 문제로 고통을 받습니다. 청장년기엔 결혼생활, 직장생활, 사업 등에서 믿음의 시련을 당합니다. 장년기엔 경제문제, 배우자 관계, 자녀 등에서 고난이 옵니다. 노년기엔 건강과 경제 문제가 주로 어려움을 유발하는 문제들입니다. 청년 여러분들이 지금 믿음의 시련이나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아마 가정환경, 이성교제, 학업과 취업 이 정도 문제와 관련되어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시련 혹은 고난이 올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성경의 가르침을 생각해봅시다. 먼저 야고보 사도는 시험을 만날 때 기쁘게 여기라고 합니다. 고난을 긍정적인 마인드로 대처하라는 것인데, 그 이유는 시련이 인내심을 길러주고 그 과정에서 성품이 다듬어지고 믿음도 깊어지고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고난을 당할 때는 여기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지난 주일 밤부터 3일 동안 극심한 치통으로 고생했는데,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 외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고난 당하기 전에 고난이 올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야고보는 고난당할 때 특히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5장 13절을 보면, 야고보는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라고 말합니다. 고통받는 사람에게 ‘기도하라’는 것은 틀에 박힌 말같습니다.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해보면 기도 밖에 달리 도와줄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만 도와주시고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엔 인내하라고 했습니다. 내가 잘못해서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면 더욱 견뎌내는 길 밖엔 없습니다. 견디다 보면, 시간이 흘러가면서 대부분 해결되고 해소됩니다. 죽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어딘가 도움의 손길이 옵니다. 피할 길도 생기고 오해도 풀리고 감정도 극복이 되고 그런 겁니다.

고난이 올 때 그래도 긍정적인 태도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인내하는 게 최선일 것 같습니다. 안 그러면 불평하고 원망할 수 밖에 없는데 그래 봐야 더 힘들어 질 뿐입니다. 욥이 고난을 당할 때 욥의 처가 하나님을 원망하며 죽으라고 악담을 했는데 그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결국 믿음으로 인내한 욥이 승리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야고보는 욥처럼 인내할 줄 아는 사람이 복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인내한 욥을 의롭다고 인정해주시고 갑절의 복을 내려 주었습니다.

기도와 인내 외에도 고난을 이기는데 도움이 되는 방법이 몇가지 있습니다. 고난의 의미를 찾고 고난을 성품 훈련의 기회로 만드는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고 성폭력자로 모함을 받아 감옥에 들어가는 시련 속에서도 한결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감옥에서도 불평과 원망대신 성실하게 자기일에 최선을 다해 섬긴 결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왕의 신임까지 얻어 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감옥에 있는 동안 바로의 대신들을 섬기며 그들을 통해 애굽 정치를 배우고 수양하는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고난이 주는 유익 중에 하나는 죄를 멀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은 여유가 있을 때 뭐 육신을 즐겁게 할 일이 없나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울타리를 넘어 죄를 짓고 그러면 그 죄 때문에 고난당하는 일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죄 때문에 생긴 고난이라도 고난 받는 중는 또 반성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마음이나 육신의 고통이 심하면 죄악의 낙을 즐길 마음이 없어지고 다시 하나님을 찾고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속하다가 사고가 날 수도 있는데 중간에 경찰에게 잡혀서 벌금은 냈지만 사고 나서 크게 다치거나 죽는 것을 면했으니 다행인셈이죠.

교우 여러분, 평안한 시대에 자유롭게 교회다니는 것을 감사합시다. 교회사를 통해 볼 때 이렇게 자유롭게 신앙생활 한 세대가 많지 않았습니다. 사실 지금도 세계 곳 곳에서 믿음의 시련을 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모슬렘 지역, 북한, 중국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믿는다고 감옥에 갇히고 굶주림을 당하다 처형을 당하기도 한답니다. 이걸 생각하면 우리 중에 누구도 불평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고난 당하는 것도 사실 자 자신 탓 아닙니까? 그러니 고난 때문에 화내지 말고 자신을 바로 세우는 기회로 삼으면 오히려 복이 될 겁니다. 여러분 인생을 그렇게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온갖 좋은 은사와 선물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자신의 어리섞음을 탓하고 지혜를 구하고 낮아짐을 자랑하며 더욱 겸손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