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함께 하시는 예수님

마태28:20; 히3:5

오늘은 ‘언제나 함께 계시는 예수님’ 이런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아는 것은 신앙생활에 큰 힘이 됩니다. 우리는 살면서 종종 시련과 고난과 실패를 경험합니다. 이럴 때는 믿음이 없어 이러는가 싶어서 불신자들보다 고통을 더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실패의 트라우마 때문에 실패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이 항상 함께 하신다는 오늘 말씀이 큰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28장 20절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히브리서 3장 5절에는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주님의 약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예수님이 언제나 함께 계신다는 믿음과 의식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주님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고 실제로 믿는 성도들과 함께 계십니다. 문제는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부족해 세상에서 시련과 고난을 당할 때 겁을 먹고 두려움에 빠져 허둥대다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사단의 유혹에 빠지는 것입니다. 당장 내일, 혹은 한 주나 한 달이나 일 년 후에 여러분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항상 주님이 함께 계시며 보호하고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기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항상 엄마 혹은 아빠를 찾는 것입니다. 잘 놀다가도 엄마 어딨어? 아빠는? 그러고 찾습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 품으로 달려와 잠시 안겨 안심하게 되면 다시 떨어져 놉니다. 아기들은 본능적으로 엄마 아빠 품에서 안도감을 느낍니다.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엄마 아빠는 자기를 보호하고 도와줬기 때문에 엄마, 아빠가 곁에 있으면 안심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의 영혼은 예수님 품에서만 평안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겠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제자들은 어떤 감정을 느꼈겠습니까?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무엇보다 보호하신다는 뜻입니다. 보호한다는 것은 위험을 막아주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준다는 의미입니다. 함께 하겠다는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지난 날 주님이 곁에 계셔 위기를 모면한 일을 기억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다가 큰 풍랑을 만나 죽게 되었을 때 주님은 바람을 꾸짖어 잔잔케 해주셨습니다(막4:38,39).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게 해주기도 하셨습니다(마14:17,21).

신앙인이라면 예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실존주의자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낍니다. 예수님이 항상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살게 되면 마음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고 당부했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이란 돈과 권력을 의지하는 것인데, 돈과 권력이 질병을 막지 못하고 사고를 막지 못하고 마귀의 공격도 막지 못하지만 주님이 함께 계시면 이런 것을 막아줄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이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마11:28). 세상살이는 고생입니다. 스트레스 받는 일이 한 두 가지 아닙니다. 가정, 학교, 직장은 물론 심지어 교회에서도 사람 때문에, 공부나 일 때문에, 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학생이든 자영업이나 직장다니는 분이든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마음 편하게 쉼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습니까? 걱정이 밀려오잖아요? 몸은 쉬어도 마음은 쉬지 못해 쉬는 게 아닙니다. 마음의 짐을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짐을 지고 서있는 것은 벌이지 쉬는 게 아닙니다.

가정이나 학업이나 직장이나 교회 일로 스트레스 받고 걱정하는 교우들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린 베드로처럼 오늘 말씀에 의지하여 근심을 내려놓기 바랍니다. 걱정되는 그 문제들을 주님 앞에 내려 놓고 쉬기 바랍니다. 옛날엔 지게로 짐을 날랐는데 요즘은 배낭을 메고 다니죠. 배낭의 짐이 첨엔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산을 오르면서 지쳐있을 때 그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죠. 그럴 때 잠시 짐을 내려 놓고 쉬면 살 것 같습니다. 쉬면서 가는 게 인생입니다. 신앙의 여정도 주님 품에서 쉬면서 가야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이 주님 품에서 쉬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쉴터입니다.

거룩함은 주님이 함께 하시는 자가 누리는 또 다른 복입니다. 영적인 사람일수록 아직도 형편없는 자신의 내면 속에 있는 어쩔 수 없는 죄악과 대면하게 됩니다. 그걸 이겨내려고 애써보지만 또 죄의 욕망에 굴복당하고 나면 수치심과 함께 절망감을 느낍니다. 바울 사도께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 낼 수 있을까 탄식한 바로 그런 심정말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성령으로 죄악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주님이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의 본성과 생각과 의지와 감정을 모두 다스리게 되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의지로 못했지만 성령의 능력으로는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롬13:14)고 말했습니다. 옷은 신분과 소속을 나타냅니다. 옛날엔 품계에 따라 관복의 색깔과 모양이 달랐습니다. 법관, 경찰, 군인, 소방관, 기관 소속마다 유니폼이 다르고 그 옷은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냅니다. 영화 속에선 테러범들이 종종 경찰관 옷을 훔쳐 있고 침입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예수로 옷을 입는다는 뜻은 예수님께 소속되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덧입는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내는 핵심적 요소는 사랑과 의를 따라 행하고 죽기까지 복종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실 때 주님의 성품에 그 사람에게도 나타날 것입니다.

죄인된 인간의 대표적인 특성은 이기심 방탕함 교만 같은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분이나 직위를 생각해 체면 지키느라 안 그런 척 하지만 알고 보면 허물 많은 사람들입니다. 지식과 권력과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더 나쁜 짓을 합니다. 불법 전입, 투기, 뇌물, 상납, 탈세, 직권남용 등. 그렇다고 보통 사람이나 서민은 청렴하거나 도적적인 것도 아닙니다. 뉴스 매체에 등장하는 온갖 부도덕한 일들의 대부분은 일반 사람들이 저지른 것입니다. 인간이 부도덕하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지난 날을 돌아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자기 자녀에게서도 그걸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자녀들이 거짓말하고, 심통부리고, 화를 내는 이면에서는 이기심과 탐욕과 교만이 숨어 있습니다. 어른이 되면 달라질 것 같지만 더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고 방탕해지는 게 인간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는 성령이 오셔서 함께 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을 보면 예수님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임재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따로 성령 따로가 아니고 예수님은 성령으로 지금 믿는 자들과 함께 계십니다. 제가 성령님을 말할 때 예수님과 구별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성령을 강조해서 말하는 것 뿐입니다. 성령님의 모든 활동은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고 예수님의 구원사역이 성취되게 하는 것이며 예수님을 잘 믿고 순종하도록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고 성장하게 도와주십니다. 따라서 성령의 내주와 인도를 빼놓고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성령의 영향을 받아 주님을 닮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 이하에는 성령의 열매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아홉가지의 성령의 열매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예수님의 성품들입니다. 성령의 열매라는 것은 성령의 인도아래 사는 사람의 성품과 행동을 통해 나타나는 변화들입니다. 예를 들어, 요한처럼 성격이 급하고 거친 사람이 오래 참아주는 사랑의 사람으로 변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마음이 변했기 때무에 셀 안의 형제나 자매를 위해 희생하고 낭비하면서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우리가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우리는 영적 상태에 따라서 예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낄때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신 것인지 의심이 생길 때가 올 것입니다. 질병과 사고 같은 재난을 당할 때, 실직이나 사업의 실패로 어려움을 당할 때, 진로와 취업 등에 대한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으로 지칠 때, 누구 잘못이든 간에 오랜 시련과 고난은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흔듭니다. 어느 무신론자로부터 온 편지에 나오는 아버지도 아내가 병으로 죽어갈 때 고쳐주시기를 기도했지만 아내가 끝내 병으로 죽자 너무 실망해 하나님을 떠난 케이스였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이렇게 시험 중에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사실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고난과 시련 속에 하나님의 침묵과 절망감을 경험합니다. 그것은 나의 잘못된 선택의 결과일 수도 있고, 믿음의 테스트일수도 있고, 사단의 공격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주님은 결코 여러분을 버리지도 아니하시고 떠나지도 아니하실 것입니다. 갓난 아기가 엄마를 알아보지 못할 때도 엄마는 언제나 아기 곁에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항상 곁에서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여러분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