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몸을 이루는 침례

행8:26-40

오늘은 수양회 기간 중에 있을 침례를 대비하여 침례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침례를 받을 분들은 오늘 말씀을 잘 듣고 믿음으로 침례받기에 합당하게 준비하기 바랍니다. 이미 침례받은 분들도 침례의 의미를 돌아보며 주님과 연합하여 한 몸이 된 것을 고백한 그리스도인답게 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교회에서 침례를 주는 것은 주님의 명령에 따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명령에 따라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기시작했습니다.

침례를 주라는 예수님의 명령이 있은 후 제일 먼저 침례를 준 것은 예루살렘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 37절부터 42절까지 보면,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신 후 베드로 사도께서 예루살렘으로 모여든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를 구세주로 보내주셨는데, 그걸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들은 많은 유대인들이 마음이 찔려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묻자 베드로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고 권했습니다. 그러자 그 날에 3천명 가량의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예수믿고 침례받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침례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에게 베푸는 신앙고백의식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가 시행되기 전에도 이미 요한은 회개의 표식으로 요단강에서 침례를 주었습니다(마3:6). 요한이 강조한 회개는 윤리나 도적적으로 잘못한 것을 반성하는 차원을 넘어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의미였습니다. 회개는 지난날 잘못한 것을 반성하는 차원을 넘어 여러분 삶에서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고 그 뜻에 순종하겠다는 고백이어야 합니다. 회개는 전향하는 것과 같습니다. 회개는 세상에 속해 살던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으로 살겠다고 전향하는 것입니다.

침례는 신앙의 차원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 장사지내고 함께 부활한 것을 고백하는 의식입니다. 로마서 6장 3,4,5절을 보면,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은 사람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받고 장사지낸 것이며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 영적 진리를 골로새서 2장 12절에서 다시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침례는 그 자체로는 죄사함을 얻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회개하고 예수 믿은 사람은 반드시 침례의식을 통해 신앙고백을 해야 합니다.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말로 고백하는 것으로 다 됐다고 생각하지 말고 침례의식으로 고백하는 단계까지 나가 세상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고백하고 증거해야 합니다.

보통 교회에서 침례라고 하지 않고 세례라고 하는데 우리 교회는 침례라는 용어를 선호합니다. 저는 언어적 의미와 역사적 배경과 신앙고백의 뜻을 고려할 때 물에 잠기는 의식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되어 침례를 주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한글 성경에 세례로 번역된 헬라어는 βαπτισμα이고 동사는 βαπτιζω로 ‘물에 잠그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세례보다는 침례로 번역하는 것이 원문의 뜻에 더 가깝습니다. 한글 성경에 세례로 번역된 것은 헬라어 성경을 한글로 번역할 때 중국성경에 세례로 된 것을 그대로 따왔기 때문입니다. 한글 성경을 번역할 당시엔 이미 침례의식 대신에 세례의식이 교회의 공식의식이 된 영향도 있습니다.

요즘은 침례보다 세례를 주는 교회가 더 많습니다. 세례가 침례 대신 교회의 공식적인 의식이 된 것은 1643년 웨스트민스트 종교회의 결과에 따른 것입니다. 1311년 라벤나 공회에서 침례와 세례는 다를 것이 없다는 주장이 있긴 했지만 16세기 종교개혁 후까지 약식세례는 교회의 공식의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643년 웨스트민스트 종교회의에서 침례와 세례 중 어느 것을 교회의 공식 의식을 할 것인지 논의하다가 표결한 결과 24대 24로 동수가 되었는데 이 때 의장이던 라이푸드 박사가 약식세례에 투표함으로 세례가 공식의식이 되었습니다.

참고로 재침례에 대해 잠깐 설명하겠습니다. 회개하는 마음과 믿음이 분명치 않은 상태에서 학습을 받고 세례나 침례를 받은 사람이 나중에 복음의 참 의미를 깨닫고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을 경우 다시 침례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유아 세례를 받은 사람이 성인이 되어 스스로 복음을 깨닫고 세례나 침례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재침례라고 부릅니다. 교회 역사를 볼 때 기독교가 로마 국교가 된 후 진정한 회개와 믿음 없이 많은 살마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며 세례를 받았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이후에도 믿는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유아세례를 받게 했습니다. 사실 유아세례는 본인의 신앙고백으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들 중에 성인이 된 후 제대로 침례받기 원해 재침례를 받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도 유아세례를 받은 경우나 중고등학교 시절에 학습받고 세례를 받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 때 제대로 믿음이 없었고 나중에 정말 예수 믿게 된 경우는 재침례를 받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생각됩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은 사람 중에 아직 침례를 받지 않은 교우들은 이번 수양회 기간 중에 침례를 받기 바랍니다. 침례는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을 선포하는 의식이기 때문에 당사자는 물론 교회도 감격스러운 의식입니다. 침례를 받은 사람은 누구든 주님과 교회와 한 몸으로 연합됩니다. 바울은 침례로 주님과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룬다고 말했습니다. 주님과 연합할 때 이미 주님과 연합되어 있는 사람들과도 한 몸으로 연합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침례는 주님은 물론 교회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룬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침례 받은 교우들은 주님께 대한 믿음과 신의를 지켜야 하고 주님의 몸인 교회의 지체로서 봉사의 일에도 힘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