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답게 살기

누가복음6:37-38

오늘은 ‘그리스도인 답게 살기’ 라는 제목으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중에 일부를 여러분과 나누겠습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6장 37,38절은 ‘산상수훈’ 속에 들어 있습니다. ‘산상수훈’은 산위에서 주신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마태복음5장 1, 2 절에,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그에게 나아왔다. 예수께서 입을 열어서 그들을 가르치셨다”고 기록되어 있고, 8장 1절엔,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많은 무리가 그를 따라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신 후 내려오실 때까지 제자들을 가르친 말씀을 기록한 마태복음5장부터 7장까지가 산상수흔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남을 심판하지 말아라, 남을 정죄하지 말아라, 남을 용서하라, 남에게 주어라” 고 말씀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이 네가지 말씀만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대부분 알고 있는 말씀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말씀대로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실천하려면 애좀 써야 합니다. 듣기만 해서는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스승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라야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남을 심판하거나 정죄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자주 범해온 말씀아닙니까? 사람들이 모이면 주로 남이야기를 한다고 하는데, 그러다보면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정죄하고 심판까지 합니다. 교인들도 예외가 아닌 것 같습니다.  원죄는 접어두고, 살면서 지은 죄를 기준으로 봐도, 여러분이 철든 후부터 지금까지 살면서 적잖은 죄를 지었을 것입니다. 죄가 없다고 하는 사람은 거짓말하는 것이랍니다. 그 중에 어떤 것은 드러나고 어떤 것은 아직까지 여러분 마음 속에 비밀처럼 숨어 있을 것입니다. 물론 회개하고 예수 믿을 적엔 그 마음 속의 죄까지 용서해달라고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용서받은 죄인들입니다. 그러니 남을 심판하고 정죄할 자격도 없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종교인들이 간음하던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을 예수님 앞으로 끌고와서 말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이런 여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는 속셈으로 자기들 생각엔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서 한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용서하라고 하면 모세의 율법을 무시한다고 고발할 수 있고, 율법대로 돌로 쳐죽이라고 하면 따르는 무리들에게 위선자로 보이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대답을 재촉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누군가 잘못을 보고 심판하고 정죄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예수님의 말씀을 먼저 떠올리고 “내가 과연 저 사람을 정죄하고 심판할 자격이 있는가”를 생각하기 바랍니다. 교회는 본래부터 죄가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 곳 아닙니까? 지은 죄가 마음에 걸려 가만 있을 수 없어서 예수 믿어 용서받아야지 그러고 교회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서로 서로 살펴보면 적어도 한 두 가지 이상의 죄와 허물을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어떤 경우는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죄가 보이는 교인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교인에 대해서도 정죄하거나 심판하지 말기 바랍니다. 정죄하고 심판할 분은 오직 마지막 심판주로 오시는 예수님 뿐입니다. 정죄와 심판은 죄인의 몫이 아닙니다. 그래야 여러분도 정죄받지 않습니다.

그 다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남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과거에 잘못한 사람이 기억나거든 지금 즉시 용서하기로 결심하기 바랍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주길 바랍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문에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용서해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해주옵소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세번까지 용서하면 되겠죠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세번뿐 아니라 용서를 구할 때마다 거듭 용서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8:21-27).

탕감받은 종의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마18:21-35). 어떤 종이 주인에게 만 달란트 빚지고 갚지 못해 왕 앞에 끌려왔습니다. 한 달란트는 노동자 15년 품삯이랍니다. 요즘 최저임금으로 계산해도 1억달러가 넘는 금액입니다. 주인은 애원하는 종이 불쌍해서 빚을 면제해주고 놔줬습니다. 그런데 이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나자 빚갚으라고 협박하다가 감옥에 집어 넣었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 품삯이랍니다. 이것을 보고 다른 종이 주인에게 가서 이 종의 무자비한 행동을 다 알렸습니다. 주인은 탕감해줬던 종을 다시 불렀습니다. 주인은 “네가 애원하기에 불쌍히 여겨 빚을 면제해주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하게 여겨야 할 것이 아니냐? “ 라고 말한 후, 그 종을 감옥 관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가두게 했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용서받은 죄 값은 1억불에 해당하고 다른 사람이 여러분에게 잘못한 허물은 천 달러 정도입니다. 우리는 평생 남을 용서하고 살아도 하나님께 용서받은 액수를 다 채울 수 없을 것입니다. 말로 마음을 상하게 했든, 재물에 손해를 입혔든, 용서를 구하면 따지지 말고 그냥 용서해주기 바랍니다. 용서를 구할 때 기회는 이 때라고 얼마나 나쁜 짓을 한 것인지 알려주려고 애쓰지 말고 쿨 하게 용서해주고 밥값이라도 줘서 돌려보내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마음의 평안을 누리며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그리스도인답습니다.

끝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남에게 주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이 가진 여분의 재물을 남에게 주어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가족, 친척, 친구, 이웃 중에 어려운 사람을 알고 있으면 그런 사람들에게 나눠 주기 바랍니다. 그것이 예수 믿는 사람의 생활방식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넘치도록 후하게 여러분 품에 안겨 주실 것입니다. 그래야 자녀들도 복을 받습니다. 여유가 있으면서도 인색하게 굴면 그 재물들이 질병이나 사고로 날아갑니다. 남에게 주는 것은 손해가 아니라 하늘 곡간에 쌓아 두는 것입니다(마6:19,20).

바울은 예수님께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행20:33). 애들 사탕 뺏어 먹으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치사한 분입니까? 예수님이 세상의 재물을 탐내신 적이 있습니까? 가나 혼인 잔치의 포도주 기적이나 오병이어의 기적을 생각해보세요. 예수님이 부자되려고 하셨다면 사실 사람들의 코 묻은 돈 같은 거 없이도 거부가 되셨을 것입니다. 그게 더 좋은 방법이셨다면 예수님이 기적으로 가난한 사람들 다 먹이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예수님께 뭘 기대했겠습니까? 떡이나 얻어 먹는 것 기대하는 것이죠. 예수님은 우리가 서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며 천국 복음이 전파되고 사람들이 단지 세상 재물보다 천국을 더 바라보기원하신 것입니다.

주라는 말씀을 들을 때 좀더 여유가 있는 교우들이 부담을 더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가난한 사람보고 재산을 팔아 나눠주라고 하신 적은 없습니다. 어느날 부자 청년이 예수님 찾아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율법의 가르침대로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어려서부터 율법대로 살았다고 당돌하게 대답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고 지적하시면서 가서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려서부터 율법을 지키려고 애썼고 영생얻는데 관심이 많은 청년이니 당연히 그러겠다고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재물이 많은 걸 걱정하며 예수님을 떠났다고 합니다(막10:17-27).

부자의 기준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빌게이츠나 워런 버핏과 비교하면 우리 모두 거지입니다. 거지가 누굴 돕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들도 검소하게 살면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습니다. 지금 아니면 나중에라도 그렇게 살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전하는 것과 함께 관대하게 남에게 주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없는 사람에게 사유재산제도는 자기만을 위해 써도 된다고 법으로 보호해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사유재산제도보다 청지기 의무가 더 우선합니다.

책에서 읽은 것인데, 요한 웨슬레가 옥스퍼드에 살던 시절 처음 수입으로 1년에 30파운드를 벌었답니다. 그는 28파운드를 쓰고 2파운드를 남에게 주었답니다. 후에 그의 수입이 60파운드, 90파운드, 120파운드로 늘어났습니다. 그는 계속 자기를 위해서는 28파운드를 쓰고 나머지는 남에게 나눠줬다고 합니다. 정말로 남에게 주기를 원하면 먼저 수입대비 지출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정당한 나의 필요를 지출하고 나머지중 일부를 남에게 줄 결심을 하고 매달 그렇게 사는 습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부자 청년에게서 본 것처럼 남에게 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교우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주님의 명령 중 세 가지를 전했습니다. 이미 여러분이 알고 있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선 실천하기 전까지는 아는 게 아닙니다. 듣고 실천하지 않는 것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말씀을 마치면서 듣고 행하는 사람만이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듣고 행치 아니하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섞은 인생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마7:24-27).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신앙생활은 말하자면,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평안할 때 신앙생활이 별 의미 없이 진부해져 무너지고 위기가 찾아오면 그걸 견디지 못해 또 무너집니다. 매일 주님 말씀대로 살려고 치열하게 세상과 내 자신의 욕심과 싸우면서 살 때 신앙생활은 현실감이 생기고 활력도 생깁니다. 여러분이 찬양의 감격이 없고 예배에서 은혜받지 못하고 하나님을 찾는 마음도 약해져있다면, 그것은 그동안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천하기 않았기 때문입니다. 듣기만 해서는 말씀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경험할 수 없습니다.

홍해도 지팡이를 내리쳤을 때 갈라지고(출14:21), 제사장이 법궤를 메고 요단강에 발을 담그자 물이 말랐습니다(수3:1,16). 초대교회의 놀라운 부흥은 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남을 심판하지 않고 정죄하지 않고 용서하는 것은 여러분이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명령입니다. 남에게 주라는 지금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부터 1불씩, 2불씩, 10불씩 실천할 수 있습니다. 한 달에 커피 한잔 덜 사먹고 그 만큼만이라도 남에게 줍시다. 그것이 모이면 100불은 될 수있습니다. 100불이면 누군가에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한 주 동안 평안을 누리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