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정국 7년

왕하8:25~29; 8:27~28 ;11장
혼돈의 정국 7년(아하시야와 아달랴시대)

한 주간 잘 지냈습니까?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국내외적으로 혼란스런 정국입니다. 한국은 민노총 주도 시위로 시끄럽고 미국은 테러문제로 불안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중동에선 터키가 러시아전투기를 격추한 사건을 놓고 양국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IS테러 대응에 차질이 생기는 게 아닌가 염려합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가 가까오고 있는 이 때도 세상은 혼란스럽습니다. 오늘은 남 왕국 유다의 6대 아하시야와 7대 아달랴의 혼란스런 정국 7년을 살펴보겠습니다.

여호람이 바알 우상을 섬기는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창자에 중병이 들어 병석에 든지 2년 만에 죽자 그 아들 아하시야가 22세에 왕위에 올랐지만, 왕이 된지 1년쯤 지났을 때 아람과 싸우다 부상당한 북왕국 요람왕을 문병 갔다가 때마침 반역을 일으킨 예후에게 요람왕과 함께 허망하게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아하시야왕이 죽자 그의 어머니자 아합의 딸로 바알 우상숭배자였던 아달랴가 다윗 가문의 씨를 말려버릴 심산으로 왕의 씨, 즉 아들과 손주들을 모두 죽였다고 합니다.

제가 오늘 제목을 혼돈의 정국 7년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7년은 여호람이 죽고 아하시야가 통치하던 1년, 그리고 아달랴가 정권을 탈취해 폭정을 행하다가 여호야다 대제사장이 주도한 아달랴 제거 작전이 성공하고 성전에 숨어 지내던 요아스 왕자가 왕위에 오르기까지 6년을 합한 것입니다. 이 시기는 유다 역사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위태로운 순간이었습니다. 아달랴가 다윗 후손들을 다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순간부터 폐위당할 때까지 6년은 남 왕국 유다에서도 다윗 후손으로 이어지던 왕위 계승이 단절된 시기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달랴는 유다에서 여호와 신앙을 말살하고 바알 우상지로 만들려고 발악을 했습니다.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이 7년 기간은 북왕국 이스라엘도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오므리가 엘라왕을 죽이고 왕좌를 차지한 시므리를 처단하고 오므리 왕조를 세워 아합, 아하시야, 요람까지 4대만에 다시 군대 장관들 중에 한 명인 예후가 반역을 도모해서 왕조가 바뀌었습니다. 예후의 반란은 아합과 그의 두 아들 아하시야와 요람이 바알을 섬기며 악정을 행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통치를 종식시키기 위해 예후를 부추겨 일어난 것입니다. 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 생도들 중에 한 사람을 불러서 예후를 찾아가 조용히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여호와께서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세웠다고 말하고 도망쳐 나오라고 지시했습니다(왕하9:1-3). 이것은 예후가 반역을 도모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선지자 생도는 다른 군대장관들과 여럿이 함께 있던 예후에게 개인적으로 전할 말이 있다고 따로 불러 기름 붓고 왕으로 선택되었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예후가 돌아오자 군대장관들 중에 한 명이 그 미친 선지자나부랭이가 무슨 일로 왔는지 물었습니다. 예후는 동료들에게 여호와께서 나를 왕으로 택하여 선지자를 보내 기름 부으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함께 있던 무리들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황급히 옷을 벗어 예후의 발아래 깔고 나팔을 불어 예후가 왕이 되었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군대장관쯤 되는 사람들이라 동물적 감각으로 살아남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한편 북 왕국 이스라엘 요람왕은 아람왕 하사엘을 상대로 길르앗 라못에서 전투하다 부상을 당해 치료하러 이스르엘로 가서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 때 남 왕국 아하시야왕도 문병차 찾아와 요람과 함께 있었습니다. 예후는 아무도 이스라엘에 있는 요람에게 반역소식을 전하지 못하게 조치한 후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향했습니다. 이스르엘 망대 파숫군이 미친듯이 병거를 몰고 오는 사람을 발견하고 왕에게 보고합니다. 왕은 누군지, 어떤 목적으로 오는 사람인지 확인하려고 전령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충분한 시간이 지나도 전령이 돌아오지 않아 다시 한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망대 파숫군은 미친듯이 병거를 모는 모양새가 예후장군 같다고 왕께 고합니다. 그러자 요람왕과 아하시야왕은 각각 병거를 타고 예후를 보러 갑니다. 요람왕은 예후를 만나자 평안이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후는 요람왕에게 “네 어미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할 수가 있겠느냐”고 소리쳤습니다.

이세벨은 페니키아의 왕 엣바알의 딸로 북이스라엘 아합왕과 결혼한 이방여인이었습니다. 당시 북 이스라엘은 페니키아와 배로 무역을 했는데 그러면서 서로 잘 지내려고 이세벨을 왕비로 맞이한 것 같습니다. 이 이세벨은 지독한 바알 숭배자여서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모두 죽이고 마지막에는 남아있던 엘리야마저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던 인물입니다. 악명 높은 아달랴가 바로 이 이세벨의 딸입니다. 북 요람왕은 유다로 시집온 아달랴의 오라비였고 유다왕 아하시야에겐 외삼촌이 됩니다. 이런 가족관계라 요람이 아람과 싸우다 부상당하자 아하시야가 직접 찾아가 병문안을 한 것 같습니다.

예후의 반역을 직감한 요람왕은 아하시아왕에게 반역이라고 소리치며 도망쳤습니다. 예후는 먼저 요람왕에게 화살을 쏘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도망치는 아하시야왕을 추격했습니다. 아하시야는 정신없이 한참 도망갔지만 결국 므깃도에서 붙잡혀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하시야는 참 허망하게 죽었습니다. 남의 나라 반역이 일어나는 현장에 있는 있다가 말려들어 살해당한 것입니다. 이것도 알고 보면 우연은 아닙니다. 죄가 차서 심판의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세를 몰아 예후는 이스르엘로 들어가 이세벨을 처단했습니다. 예후의 지시를 받은 내시들이 이세벨을 왕궁 창문 밖으로 내 던져 사지가 찢겨 나가는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 다음 예후는 방백과 장로들과 왕자들 교육을 담당하는 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사마리아에 있던 아합의 아들 70명을 죽이게 했습니다,.

제가 열왕기의 여러 왕들을 대상으로 설교를 하다보니까 참 잔인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나누며 은혜 받고 기분도 좋고 그러고 싶은데 죄인들이 만들어 간 역사는 그러질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예후의 쿠데타로 아들이 살해당하고 친청 어머니를 비롯해 오라비와 조카들이 몰살당한 것을 알고 미치광이가 된 아달랴는 자신이 왕위에 오르기 위해 자기 손주들까지 남김없이 도륙하고 스스로 왕좌에 앉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가문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어린 왕자 하나를 살아남게 해주셨습니다. 아하시야왕의 누이 여호세바가 왕자들이 살해당하는 위급한 순간에 요아스왕자를 아달랴의 손에서 구해내 성전에서 6년 동안 숨어지내게 했습니다.

6년이 지난 후 당시 대제사장이던 여호야다가 백부장들을 불러 여호와의 전에서 언약하고 요아스 왕자를 보이고 호위하게 하여 요아스왕자에게 면류관을 씌우고 율법책을 주고 기름부어 왕을 삼고 왕 만세를 외치게 했습니다. 뭔가 소란스런 낌새를 느낀 야달랴가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성전에 들어 와 면류관 쓴 왕이 서 있고 백성들이 곁에서 즐거워하며 나팔을 부는 것을 보고 반역이라고 소리쳤습니다. 이 때 제사장 여호야다가 군대를 거느린 백부장에게 명하여 아달랴와 그녀를 따르는 무리들을 여호와의 전 밖으로 내 보내 밖에서 칼로 죽이라고 명했습니다. 아달랴와 그녀를 따르던 무리들은 성전 밖으로 나오는 순간 모두 살해되었습니다.

아달랴의 폭정은 이렇게 죽음으로 끝나고 요아스왕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아달랴의 6년 통치 내용에 대해선 성경에 자세한 기록이 없습니다. 기록할 가치도 없다고 본 것 같습니다. 아하시야나 아달랴 모두 바알을 섬기다 인생을 망쳤습니다. 복을 받겠다고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도 결국은 이렇게 지옥에서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을 떠나 우상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특히 재물과 세상의 성공이라는 우상에 굴복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한 주 동안 주 안에서 승리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