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귀영화를 누린 여호사밧

왕상22:41-50;대하17:1-20:34

  역사를 통해 뭘 본다는 것은 주관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예컨데 여호사밧에 대해 뭘 말하려면 직접 만나서 왜 그렇게 했는지, 그 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직접 들어봐야하는데, 그럴 수도 없고, 자료 또한 여호사밧 자서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써 놓은 것을 보고 오늘의 시점에서 평가하는 것이니까 한계도 있고 부족하기도 합니다. 남의 이야기, 역사를 공부할 때는 그런 점을 감안하고 봐야 합니다.오늘은 유다의 네번째 여호사밧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남왕국 유다 네번째왕 여호사밧은(BC872-848) 북왕국 7대 아합왕2년에 35세에 즉위해서 유다를 25년 통치하고 요북왕국 9대 요람5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본문43절을 보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고 평가되어 있습니다. 단 몇 구절로 된 평가지만 이런 평가를받기까지는 참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대충 욕망을 따라 살면 결코 얻을 수 없는 평가입니다. 우리도 세상을 떠나면 하늘 나라에서 다 평가합니다. 그걸 기억하고 하루 하루 살기 바랍니다.

  먼저 여호사밧왕의 신앙에 대해 살펴봅시다.여호사밧왕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고평가되어 있습니다.하지만 열왕기에는 어떤 면에서 그런 평가를 받았는지 자세한 기록이 없습니다. 역대기를 보면 좀더 설명이 나옵니다.여호사밧이 즉위 초부터 남색하는 자들을 쫓아내고 산당도 폐하려고 노력하는 등(대하17:6) 우상을 멀리하고 제사장과 레위사람을 보내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율법을 가르치며힘을 다해 여호와께 섬기자 주께서 여호사밧을 도와주셨습니다.

  산당에 대해 좀더 살펴보면, 역대하20장 33절에, “그러나 산당은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께 마음을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여호사밧은 유다에서 산당과 아세라 목상을 제거하려고 노력했지만 근절시키지 못한 것 같습니다.(왕상22:43). 그 당시산당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곳이기도 했지만, 우상을 섬기는 곳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본문 중에 남색하는 자들이 나오는데, 이들은 산당에서 사제들과 더불어 풍년을 기원하면서 음행을 행한 것 같습니다. 산당은 말하자면 혼합종교의 온상이었던 셈입니다. 복을 비는 원초적 욕망에 빠져 하나님께 제사하면서 동시에풍년을 기원하는 바알우상의식도 벌인 것 같습니다.

  오늘날 물질중심의 기복적 태도가 또 다른 형태의 혼합종교이자 물질우상에 빠지는 것일 수 있습니다.가끔 방송설교를 보면 노골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미화하면서 재물의 탐욕을 부추기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우리도 재물에 대한 욕심이 있기 때문에 기복적 신앙은 항상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조엘 오스틴의 잘 되는 나, 긍정하는데로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식의설교 역시 인간의 욕망에 편승한 기복적 신앙의 한 형태로 보여집니다.

  일부 백성들에게 산당제사에 참여하면서 두 마음을 품는 문제가 있었지만, 여호사밧왕은 일심으로 하나님을 구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을 돕고 지켜주시고 복도 내려주셨습니다. 여호사밧 통치기간 동안 북 이스라엘왕들은 여호사밧왕과 화평한 관계를 유지했고, 블레셋은조공을 바치고,  유다 지방 유력자들은 여호사밧왕에게 예물을 드리며 섬겼습니다.그리하여 여호사밧은 재위기간 동안 유다를 부강하게 만들었고 개인적으로도 부귀와 영광을 누렸습니다.하는 일이 잘되고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사는 것은누구나 바라는 최상의 인생입니다. 여호사밧왕은 그런 인생을 산 것 같습니다.여러분도하나님 잘 섬겨서 여호사밧처럼 부귀와 영광을 누리기 바랍니다.

  여호사밧이 왕으로서 어떻게 나라를 위해 일했는지도 살펴보겠습니다. 역대기17장 기록을 보면, 여호사밧은왕이 된 후 “스스로 강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방비했다”고 나옵니다(대하17:1).여호사밧은 유다 모든 성읍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선왕 때 점령한 에브라임 성읍들에도 군부대를 만들었습니다.군사양성에 힘써서 유다지파에서 78만명, 베냐민 지파에서46만명 합쳐서 124만의 병력을 양성했습니다. 아버지 아사 때 58만명과 비교하면 배 이상으로 군사력이 증대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국제관계에선 어느 정도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땅덩어리나 인구수만으로 강대국이 되진 못합니다. 경제력과 군사력 두가지를 다 가져야 합니다. 여호사밧 때는 이 두가지를 다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호사밧은 유다 온 성읍마다 재판관을 세워 일반적 사항에 대해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송사를 처리하게했습니다. 여호사밧왕은 재판관에게여호와를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불의함도 어느쪽으로 치우치는 것도 뇌물을 받는 것도 없이 공평무사하게 처리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또한 종교에 관한 송사를 재판하도록 제사장과 레위인 중에서 재판관을 세우고 여호와를 경외하며 충의와 성심으로 직무를 수행하도록 당부했습니다. 우리는 여호사밧이 재판관들에게 당부한 말을 통해 그 자신이 여호와 앞에서 그런 마음으로 왕의 직무를 수행했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여호사밧 통치기간 동안 하나님이 지켜부셔서 안전했지만, 그렇다고 침략이나 전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여호사밧이 북이스라엘 아합왕관 혼인으로 사돈관계를 맺고 평화롭게 왕래하던 중, 이스라엘 아합이 아람을 침공할 계획을 세우고 여호사밧에게 함께 아람을 치자고 제안했습니다. 여호사밧왕은 아합의 딸 아달랴를 며느리로 받아들여 아들 여호람과 결혼시켰습니다.그러니 아합의 요청을 그냥 거절하기 어려워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선지자를 불러 물어보자고 합니다. 그래서 아합이 선지자 400명을 불러다  물어보게 했는데, 사실 이들은 다아합의 의중에 맞춰 하나님 뜻이라고  거짓말하는 어용선지자들이었습니다. 뭔가 석연찮다고 느낀 여호사밧이 다른 선지자가 없느냐고 해서 데려온 사람이 선지자 미가야였습니다. 미가야는전쟁중에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같이 흩어지는 환상을 보았고 천상에선 거짓 영이 나와서 선지자들의 입에 있어 거짓 예언을 한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전쟁하기로 이미 마음 먹은 아합이 미가야를 옥에 가두고 기어이 전투에 나갔다가 아합은 전사하고 여호사밧은 겨우 도망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선견자 예후의 책망을 듣기도 했습니다.

  모압과 암몬 자손이 여호사밧을 치러 공격해 온적도 있었습니다(역하20:1). 침공소식을 듣고 여호사밧은금식을 선포하고 유다 모든 성읍에서 어린 자녀까지 다 데리고 여호와 앞에 나와 간구했다고 합니다. 역대하20장 12절 보면,”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봅니다” 그렇게 기도합니다. 우리가 찬양할 때 ‘주만 바라봅니다’ 이런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유래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레위 사람 아히야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 큰 무리로 겁내지 말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니 내일 시스 골짜기 어귀로 나가 맞으라 여호와께서 직접 저들을 멸하실 것이니 두려워 말라”고했습니다. 하나님은 적이 어디로 올 것인지 알리고 복병을 배치하여 적을 물리칠 수 있게 도와주셨습니다. 그 전투에서 여호사밧의 유다는 엄청난 전리품을 얻고 그 소식을 듣고 주변 나라는 여호와를 두려워하게 되고 유다는 평안을 누립니다.

  종합적으로 평가할 때 여호사밧은 신앙에서 승리하여 왕으로서 통치 또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유다의 역사는 하나님을 잘 섬길 때 하나님께서 유다를 지켜주시고 왕 개인의 인생도 복받고 형통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입니다. 물롬 이것은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만 호소력이 있는 메세지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지켜주실 때도 적의 침공은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전쟁을 이기게 도와주시고 전리품을 얻고 주변 나라들이 두려워 조공을 바치게 상황을반전시키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삶에서도 하나님이 도와주시어 어려움이 변해 복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