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야의 두 모습

열왕기상15:1-8, 역대하13:1-22

오늘은 남왕국 유다의 두번째 왕 아비얌(아비야)의 두 모습을 살펴보고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 것인지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열왕기에는 아비얌으로 역대기에는 아비야로 나오는데 같은 인물입니다. 두 모습이라고 한 것은 열왕기에는 우상숭배하며 하나님을 배신한 나쁜 왕으로 평가되어 있는데, 역대기에는 하나님을 매우 잘 공경하는 왕처럼 묘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비야가 왕이 된 것은 어머니의 공이 큽니다. 아비야의 아버지 르호보암 왕은 아내 18명에 첩 60명을 두고 아들 28명과 딸 60명을 낳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비야가 왕이 된 것은 르호보암 왕이 아비야를 낳은 압살롬의 딸 마아가를 모든 처첩보다 더 사랑해서 실제로는 장자가 아닌데도 장자로 삼아서 계승자의 지위를 주고 다른 아들들에게는 유다와 베냐민의 성읍에 흩어져 살게 하고 양식을 후히 주고 아내를 많이 구해주었다고 합니다(역11:21-22). 역대기 기자는 이것을 매우 지혜롭게 잘 한 처사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남은 재산을 놓고 자녀들이 다투지 않도록 부모가 미리 정리해주는 게 좋습니다.

아비야는 르호보암왕 생전에 이미 후계자로 알려졌기 때문에 르호보암왕이 죽자 곧바로 왕위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3년을 통치했습니다. 그가 어떤 왕이었는지는 3절에 “그 부친의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 마음이 그 조상 다윗의 마음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했다고 평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평가를 받았는지 자세한 기록은 없습니다. 통치 기간이 3년으로 짧기도 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잘 한 게 없어서 그냥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간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역대기엔 북쪽 여로보암과 전쟁할 때 여호와를 매우 경외하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역대기13장에 아비야가 유다 왕위에 오른 직후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왕과 전쟁을 벌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직후부터 남 유다의 르호보암왕과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사이에는 줄곧 전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비야도 왕이 되자 마자 전쟁을 해야 했던 것 같습니다. 분열되었다고 해도 같은 민족인데, 동원한 병사들의 규모가 엄청납니다. 두 지파로 구성된 유다의 아비야는 40만명을 동원하고, 10지파가 모인 북 이스라엘은 80만 대군을 동원했습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이 100만이 넘는 군사를 모집한 것은 싸울 수 있는 남자들은 죄다 모아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아비야와 여로보암 군사들은 에브라임 산 중 스마라임산 근처에서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스마라임은 베냐민지파가 기업으로 얻은 에브라임 산지로(수18:22) 여리고 북쪽 끝 벧아라바와 벧엘 사이로 추정됩니다. 지도를 참고해서보면, 그들이 대치하고 있던 곳은 유다왕국의 베냐민지파와 북이스라엘의 경계선상으로 요단 골짜기 서쪽 약 4km 지점에 있는 ‘와디 엘 켈트’(Wadi el-Qelt) 여리고의 동남쪽 광야로 생각됩니다.

싸우기 전에 먼저 심리전이 전개되었습니다. 유다의 아비야가 먼저 기선을 잡았습니다. 아비야는스마라임산에 올라 북 이스라엘의 80만 대군이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아비야의 연설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아비야는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왕권을 주실 때 그 직계 후손으로 왕위를 계승하게 해주신다고 약속한 것을 상기시키며 왕국의 정통성은 유다에게 있다며 여로보암을 반역자로 몰았습니다.

아비야의 주장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 후손이 대를 이어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해주겠다고 하셨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사후에 나라가 분열되고 여로보암이 북쪽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여로보암의 사사로운 반역이 아니었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 그랬기 때문에 그 징벌로 나라가 나뉘고 유다는 계속 북 이스라엘로부터 고통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아비야도 이걸 모르진 않았겠지만 아마도 북 이스라엘 군사들의 사기를 꺾어 놓으려고 그랬을 것입니다.

그 다음 두 번째 연설의 요지는 우상숭배를 조장해온 여로보암에 대해 여호와의 진노가 임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은 예루살렘 북쪽에 거주하며 자기를 지지하는 백성들이 제사를 위해 예루살렘을 출입하다가 민심이 유다로 기우는 것을 막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제사하는 것을 금하고 대신 벧엘에 산당을 만들고 금송아지를 놓고 거기서 제사하게 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숭배에 빠지게 했습니다. 아비야는 이것에 주목하고 여로보암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이렇게 우상숭배를 조장했으니 하나님께서 결코 여로보암을 도와주지 않으실 것이라며 유다를 상대로 싸우지 말고 그냥 돌아가라고 설득했습니다.

아바야의 두번째 연설 내용은 사실이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의 집을 버리시고 재앙을 내릴 때 바로 벧엘에서 우상숭배를 조장한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아비야의 연설은 아군에게는 큰 용기를 주고 대적하던 북 이스라엘 대군에는 상당한 동요를 일으켰을 것입니다. 전투력만 놓고 본다면 북 이스라엘이 남 유다보다 갚절 이상 강했을 것입니다. 우선 두 왕을 비교할 때 아비야는 전투 경험도 거의 없고 이제 막 왕위에 오른 상태이고 여로보암은 20년 가까이 왕위에 있으면서 남 유다와 계속 전쟁을 해온 용사였습니다.

여로보암은 전쟁에서 무슨 말이 필요가 있느냐는 듯 곧바로 포위작적으로 유다군을 공격해 들어갔습니다. 여로보암은 유다군사들 뒤에 복병을 배치하고 앞에서 밀고 들어갔습니다. 유다도 적잖은 40만 대군이었지만, 이스라엘이 배나 많은 80만 대군이었기 때문에 센드위치 작정이 가능했습니다. 조금전까지 아비야는 큰 소리를 치며 연설했지만, 막상 전투가 벌어지자 거세게 밀고 나오는 이스라엘 군사들을 보고 위기를 느꼈습니다. 복병이 숨어 있다가 나타나 공격하기 때문에 뒤로 피하기도 어렵고 그대로 가다가는 전멸할 상황이었습니다.

앞 뒤의 적병을 보고 겁 먹은 유다 사람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14절). 40만 대군이 한꺼번에 외쳤다고 하니까 아마 산이 떠나갈 지경이었을 것입니다. 전쟁 중에 소리질러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지만, 그 순간은 살기 위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정말 하나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펴셨습니다. 성경엔 하나님이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을 아비야와 유다 앞에서 쳐서 패하게 하시니 이스라엘 병사들이 혼비백산해서 도망갔다고 나옵니다. 아비야와 유다 군사들이 도망가는 이스라엘 병사들을 뒤쫓아가 쳐 죽인 이스라엘 병사가 50만명이었다고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전쟁을 한 겁니다.

이 전투로 인해 북 이스라엘의 국력은 크게 약화되었고 여로보암은 다시 강성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치시니 결국 3년 후에 죽었습니다. 아마 질병으로 죽음을 당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여로보암의 군사들을 치셨는지 설명이 없기 때문에 알 수 없습니다.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진영에서 혼란이 일어나 정신없이 저들끼리 싸우다가 정신차리고 보니까 자기들 병사들이 대거 죽어나간 걸 보고 갑자기 죽음의 공포가 밀려와 도망가다가 대부분 창과 칼에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 이긴 전투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상황이 반전되어 어떻게 된 영문인지도 모르고 죽어간 것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아비야는 성읍 몇 개를 빼앗았는데, 벧엘과 그 동네와 인근 지역이었습니다. 아비야는 자기 힘으로 이스라엘을 쳐서 멸하고 진격해 들어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해서 적군만 멸망시켜 전쟁을 이기게 된 것이라 전리품은 많지 않았습니다. 벧엘과 그 인근 땅을 취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벧엘은 단지 한 성읍이상의 의미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벧엘은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섬기게 한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곳을 쳐서 유다에 편입시켜 우상숭배를 못하게 하고 우상을 섬긴 여로보암을 징계하신 것입니다.

끝으로 아비야의 두 모습이라고 한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비야는 왕이 된 직후 여로보암과 전쟁을 했습니다. 여로보암의 대군을 상대로 행한 아비야의 연설을 보면 그래도 아비야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는 신실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열왕기15장 3절에 묘사된 아비야는 하나님께 온갖 죄를 지은 나쁜 왕으로 나옵니다. 왜 이렇게 다릅니까? 아마도 왕이 여로보암을 물리치고, 단지 물리친 정도가 아니라 50만 대군을 도륙해서 이제 더 이상 위협이 될 수 없게 되자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에 좋은 대로 하면서 결국 부왕 르호보암처럼 여호와 앞에서 온전하게 살지 않은 것입니다.

르호보암도 초기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래서 각지파에 흩어져 있던 제사장과 레위인들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내려와 유다에 합류하고 그러면서 초기 3년 동안 점차 강성해지자 자만에 빠져 여호와를 떠나 애굽왕 시삭의 공격으로 초토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비야도 거의 비슷한 과오를 범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위험이 사라지자 믿음에서 떠나 악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 결과 아비야는 왕위에 오른 후 3년 밖에 못살고 죽었습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든 간에 앞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삼가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비야와 유다 백성들이 승리한 것은 자기들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도와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나갈 때 이 점을 꼭 기억하기 바랍니다. 죽게 생겼을 때 살려달라고 기도한 사람은 더욱 더 명심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원래 역대기는 실제 사건이 일어난 수백 후에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갔을 때 그 당시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포로 생활하는 유다 백성들에게 아비야 때 전투의 승리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성패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이야기로 설교말씀을 듣는 목적도 앞으로 내 인생의 성패 역시 하나님 손에 있으니 어려울 때는 물론 평안할 때도 방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생각해서 다윗의 후손들에게 계속 은혜를 베풀고 잘못을 용서해주고 다시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생각해서 그 아들 솔로몬을 봐주고 등불이 꺼지지 않게 그 후손들로 왕위를 이어가게 배려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경외하는 자에게 자녀와 그 후손들에게까지 복을 내리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하나님을 잘 섬기고 믿음으로 살아서 자녀나 손자들이 자기들이 한 것도 없이 복을 받고 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왕들의 이야기란 책을 쓴 한홍 목사는 양쪽 집안 어른들이 쌓아 올린 기도의 적금을 많이 타서 쓴다고 그럽니다(한홍, 왕들의 이야기, p.224) 여러분도 자식들과 후손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하는 그런 부모와 조상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