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탓 하지 맙시다

창6:1-12
세상 탓 하지 맙시다 

한 주 동안 평안하셨습니까? 반갑습니다. 오늘은 창세기6장을 통해 노아가 살던 시대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5,6절을 보면,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차고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독해서 하나님이 사람 지으신 것을 후회하실 정도 였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된 것인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생각해봅시다. 

1절에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여기 사람들은 가인과 셋의 후손들을 가리킵니다. 아담에겐 가인과 아벨 두 아들이 있었는데, 동생 아벨은 형 가인에게 살해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아담은 세번째 아들 셋을 낳습니다. 아벨이 죽을 때 결혼하고 자식을 낳았는지 그 부분에 대해선 성경에 언급이 없어서 알 수 없습니다. 미혼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동생을 죽인 가인은 아버지 집에서 추방되어  에덴 동쪽 놋 땅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가인은 도시를 건설하고 자녀를 낳고 살면서 그의 후손들이 태어나가인의 씨족 공동체가 생겨났습니다.창세기4장 보면, 가인의 후손이 5대가 이어져 내려간 기록이 나옵니다.  추방된 후 가인과 그 후손들은 하나님을 떠나 살면 자기 소견에 좋은데로 육신의 욕망을 따라 죄 가운데 살게 됩니다. 
아담은 130세에 세번째 아들 셋을 낳았습니다. 창세기4장 25,26절보면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여 아들을 낳았고 일찍 죽은 아들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고 해서 셋이라고 불렀습니다. ‘셋’은 ’대신 놓는다’는 뜻입니다. 105세에 셋은 아들을 낳아 에노스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그 때 비로소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셋의 가문은 9대를 이어가면서 많은 후손들이 태어났습니다. 

2절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의 아름다움, 즉 미모를 우선으로 자기들의 아내를 삼았다고 나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군가에 대해, 천사 또는 셋의 후손 남자들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천사라는 견해는 천사는 결혼하지 않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에(마22:30) 맞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섬기며 산 셋의 후손 남자들을 말하고, 사람의 딸들은 하나님을 떠나 육신의 욕망에 따라 산 가인의 후손 여인들을 가리킨다는 것이 전통적인 성경해석이 되었습니다. 

본문 2절은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신앙이나 성품보다 먼저 미모를 보고 결정해서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세상이 점점 문란해지면서 죄악이 가득차게 되었다는 보여줍니다. 지금도 대부분 남자들은 이쁜 여자에게 집착합니다. 신앙도 좋고 이쁘다면 누가 뭐라하겠습니까? 하나님 안 믿고 교회도  안가려고 하는데 그래도 좋다고 결혼해서 결국 자기도 신앙생활 잘 하지 못하고, 결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자녀가 어머니 영향으로 믿음 없이 자라서 결국 세속적 가치를 따라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롯의 처를 보면, 사람이 변하는 게 참 힘든 일임을 느끼게 됩니다. 완벽한 사람은 아니라도 롯은 그 시대에 ‘의인’ 평가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롯도 아내가 세상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도록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소돔이 죄악으로 심판을 받을 때 롯의 아내는 세상에 대한 미련 때문에 뒤를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솔로몬 같이 믿음과 지혜가 있던 사람도 결혼 동맹을 추진하면서 많은 이방여인을 궁에 들여 그 여자들 영향으로 하나님에게서 마음이 멀어졌다고 합니다. 믿음없는 배우자와 살면 몇 배의 노력을 해야 겨우 평균수준의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보다 가정과 자녀에게 더 영향을 줍니다. 여자들은 시집 올 때 자기가 태어나 자란 친정집의 전통이나 관습이나 우상이나 생활방식과 가치관도 함께 가지고 옵니다. 자녀들은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영향을 더 받으며 성장합니다. 요즘은 좀 다를 수도 있지만, 옛날에는 남자들은 사냥이나 전쟁하러 밖으로 돌아다니고 집안은 어머니가 머물며 자녀 교육도 담당했습니다. 당연히 신앙도 어머니를 통해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아버지가 유대인이라도 어머니가 이방인이며 거기서 태어난 사내는 이방인으로 간주했습니다. 이방인 어머니 아래서 자라면 유대인 핏줄도 이방인 문화 속에 자라서 이방인처럼 된다고 본 것입니다. 반대로 아버지가 이방인이더라도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거기서 태어난 사내는 유대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어머니를 통해 유대인 신앙을 가지고 자라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3절을 봅시다. 하나님께서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래는 나의 신, 곧 하나님의 영이 인간과 영원히 함께 하려고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남자들까지 미모만 보고서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는 여자를 아내로 취하고 자기 아내 말을 더 들으면서 세상의 가치, 육신의 욕망에 따라 살면서 죄악을 범하자 실망하신 하나님께서 끝까지 함께 하기 힘들다고 판단하신 것 같습니다. 이것은 빛과 어둠이 함께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로 생각하면 됩니다. 

여기서 육체가 되었다는 말은 타락한 본성, 육신의 욕망에 지배당하고 있는 특성을  표현한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고 하나님의 영이 불어 넣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영과 육체가 공존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범죄하여 영의 기능은 소멸되면서 육신의 욕망에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과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들이 육신적 욕망과 세속적 가치의 지배를 받는 불신자 아내의 영향을 받아 점점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육신의 욕망에 끌려갔습니다. 육체가 되었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120년이라고 말씀하실 당시에 이것이 노아 홍수가 일어날 때까지의 120년을 뜻하는 것인지, 앞으로 인간의 최대 수명이 120년이라는 된다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어느 쪽으로 해석하든  노아 홍수 이후부터 인간의 수명은 급격히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120년을 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셋의 후손이 가인의 후손과 통혼하면서 육체의 욕망에 따라 살자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할 수 없게 되었고, 또 말려도 듣지 않아 소용없다는 것을 아신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하시면서 심판을 결심하신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즉시 심판하신 것은 아니고 120년의 기간을 두고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를 주시는 한편, 노아에게는 심판을 대비해 방주를 만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실 하시더라도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대표적인 예가 요나선지자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앗수르의 수도였던 니느웨는 죄악이 가득찬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촉구하라고 시켰습니다. 앗수르는 당시 이스라엘과 원수 나라였기 때문에 요나는 니느웨가 심판받고 멸망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지금의 스페인 쪽이며 니느웨 와는 정반대 서쪽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풍랑으로 배가 전복될 상황을 만들어 요나는 바다에 던져지고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켰다 잘못을 뉘우치게 만든 후 다시 토해내게 해서 결국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외쳤고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말을 듣고 회개하고 돌아와 심판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평생 동안 기회를 주십니다. 살아있는 동안 언제라도 죄를 깨닫고 예수 믿고 하나님께 돌아가겠다고 하면 모든 죄를 용서해주십니다. 그러니까 노아 시대 사람들은 자그만치 120년을 거부하다가 멸망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 4절에 ‘네피림’이란 종족이 나옵니다. 네피림은 히브리어를 그대로 음역해놓은 것인데, 번역하면 거인족이라는 뜻입니다. 민수기13장 33절에도 나오는데,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보내 탐지하게 할 때 거인들을 보았는데, 그들을 네피림의 후손이라고 했습니다. 이 때 네피림, 용사들이 많이 태어난 것은 육체적으로 힘쎄고 건장한 사내들이 이쁜 여자들을 아내로 얻어, 말하자면 신체적 조건이 우수한 유전 인자를 가진 사람들이 결합해서 거대한 2세들을 얻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고대 사회는 무식하게 힘쎈 사람이 최고일 때니까 이런 자들이 유명한 전사가 되고 전쟁영웅은 또 왕의 자리를 얻고 그랬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보다,  ‘육체가 된 사람들’이 득세하는 그런 세상이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대부분 나라에서 재물이든 권력이든 가지고 높은 자리에 올라 행세하는 사람들은 주로 불신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세상이 오기 전엔 하나님을 잘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려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득세하기는 어렵습니다. 세상 정치는 온갖 술수와 협잡과 속임수와 거짓말이 난무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불의한 수단과 방법까지 동원해서 정보를 수집하고 사람들을 조종하며 때로는 회유하고 때로는 협박하며 힘의 논리에 의해 움직입니다. 그런 세상에서 사랑과 섬김의 원리에 따라 정치하고 나라를 운영한다고 되겠습니까? 신앙생활은 사랑과 섬김으로 가능하지만, 기업경영, 나라 운영, 정치는 안됩니다. 왜냐면 이런 영역에선 아직 사단이 왕노릇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지배자가 되려는 것은 신앙을 잃을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기독교, 혹은 목사들이 무슨 정당을 만들어 세속 정치에 참여하겠다는 발상이야말로 어처구니 없는 짓입니다. 

신앙의 역설인데, 세상적으로 너무 잘 나고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더 찾고 감사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모든 일이 다 잘 될 때는 그 일을 위해 별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뭔가 일이 좀 잘 안되고 그래서 좀 모자라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육체가 된 네피림들도 세상적으로 너무 강하고 잘나가니까 하나님 없어도 괜찮았고 자기들 힘으로 다 할 수 있었으니 하나님이 필요치 않았을 것입니다.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고 마음 속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하다는 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 당시 사람들을 만나서 물으면 이런 평가에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고 그럴 겁니다. 세상은 다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에 비춰볼 때 죄악이고 잘못된 것인데 사람들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고 저마다 자기 기준을 가지고 선악을 평가하며 정당화하고 변명하며 살아갑니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은 더 악해지고 죄악은 세상에 퍼져나갑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이전 시대엔 죄악으로 생각했던 것을 지금은 문화적 차이나 취향의 다양성으로 간주하며 넘어갑니다. 

그런 세상에서도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고 살았는데, 그것은 노아가 죄악이 가득하고 모든 사람이 악한 생각을 하는 그런 세상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양심에 따라 살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를 “의인,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평가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세상 탓을 하지 말자고 한 것입니다. 세상을 탓하고 핑계 데는 것은 세상의 죄악을 경계하며 사는 사람이 아니고 세상의 재물과 권세를 탐하며 죄를 짓고는 왜 그렇게 사냐고 할 때 세상 탓이라고 핑계 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익스큐즈는 받아들이지 않으십니다. 세상 탓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세상의 기준으로 선악을 판단하는데 익숙해지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악도 괜찮다고 잘못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통해 세상을 보는 그런 관점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성경이 시대에 안맞는다는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 죄를 범하지 않도록 유념하기 바랍니다.  어떤 가치관이 세상을 지배하든지 우리는 성경말씀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보시는 선악의 기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세상이 악할수록  노아와 같은 당대의 의인,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신앙인이 되어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런 인생을 사는 복을 누리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