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사랑으로 돌보는 공동체가 되어야

요한1서4:7-12
교회는 사랑으로 돌보는 공동체가 되어야 

 오늘은 요한 일서 4장 7절부터 12절 말씀에 근거하여 사랑을 주제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말할 것도 없고, 아직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없는 교인들도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교인들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저는 알고는 있지만, 행하기는 쉽지 않은 교우 사랑에 대해 한 번 더 강조하려고 합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예수 믿고 성령으로 연합하여 주님의 몸을 이룬 사람들을 교회라고 합니다. 교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열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한 사도께서 강조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들을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받고 죽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희생을 대가로 해서 우리는 구원의 선물을 공짜로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 8,9절에서 요한은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께 은혜 입었다는 것을 인정하며 사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는 증거는 하나님을 시인하는 마음과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죄인된 사람들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고 예수님의 대속도 믿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먼저 은혜를 베풀어 믿음이 생기게 도와주셔야 믿어집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증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1절에 요한은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이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의 빚을 진 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그걸 받아야 할 빚이라고 하시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그러기를 원하시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게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았으니 사랑이 필요한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며 살자는 것입니다. 

마태복음18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일만달란트 빚을 면제받고서도 자기에게 백데나리온 빚진 자를 잡아 모질게 다그친 악한 종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달란트나 데나리온은 신약시대 화폐단위인데, 1 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 품삯에 해당되고, 1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으로 16년치 임금입니다. 하루 품삯을 5만으로 할 경우 일만달란트는 2조 4천억에 해당하고 백데나리온은 5백만원입니다. 2조 4천억을 면제받고 정말 감사하다고 그러고서 나가서는 자기에게 5백만원 빚진 사람을 잡아가 빚갚으라고 매일 못살게 굴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럴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이 비유는 용서는 물론 사랑의 실천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일만 달란트처럼 이렇게 엄청난 액수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만큼 큰 죄인이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은 비유로 말하자면 2조 4천억에 해당할 만큼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사실 생명보다 더 귀하고 값비싼 게 어디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이 천하를 얻더라도 제 목숨을 구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말하자면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얻은 것으로 이조 사천억을 먼저 받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생각하며 아낌 없이  서로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주 안에서 교인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 재물로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재물이 함께 가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헐 벗고 굶주린 형제에겐 먹고 입을 것을 함께 주며 위로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말로만 해서는 큰 도움이 안됩니다. 그래서 교인들을 사랑하려면 희생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수고와 희생이 따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의 죄를 위해 죽음에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온갖 고생을 다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 뭘 갖기 위해 돈을 쓰거나 세상 구경을 다니거나 그러신 적이 없었습니다. 정말 무슨 재미로 사셨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정말 예수 믿고 따르려는 사람은 이런 점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우리가 자기를 위해 돈을 쓰고 여가도 즐기는 그런 것을 전혀 하지 않고 살 수는 없겠지만, 그런 만큼 비례하여 믿음의 가족들에게도 관심을 더 기울이고 더 도와주고 그렇게 삽시다. 그래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답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혹시 꼭 그렇게 까지 하라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한다면 법보다 더 큰 주님의 뜻이고 성경의 가르침이 그렇게 하며 살라고 하십니다. 

요한 사도께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대상은 일차적으로 목장멤버들과 교인들입니다. 목장 멤버들을 가장 먼저 사랑하기 바랍니다. 말씀으로 격려하고 기도로 지원하고 경제적으로도 후원하기 바랍니다. 셀 모임할 때 한 달에 얼마를 가지고 사는지, 형편이 어떤 지도 구체적으로 나누고 좀더 여유가 있는 사람은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기 바랍니다. 목장 안에서 할 수 없는 경우는 교회와 상의해서 교회차원에서 함께 도와주고 그러면서 우리 늘푸른교회가 가정에서 처럼 실질적으로 사랑을 주고 받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게 합시다. 

어떻게 해왔느냐보다 지금부터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말만하고 실제로 사랑을 나눔에 인색하다면 하나님을  외면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다른 어떤 것보다 사랑을 통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영성의 진수는 사랑이라고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이 천사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하거나, 예언의 은력이 있어 모든 비밀을 안다고 하거나 믿음의 기도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고 해도 사랑이 없다면 사실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랑의 실천은 믿음의 분량과 수준에 맞춰 시작하면 됩니다. 먼저 목장 멤버와 교인들에게 먼저 관심을 보입시다. 따뜻한 인사를 건네고 힘든 교우에겐 위로하고 격려해줍시다. 서로 사정을 들어주고 아는 범위에서, 또 할 수 있는 정도만큼이라도 지체들을 후원해줍시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처럼 목자와 양들이 서로 서로 돌아보며 사랑하기 바랍니다. 복음송처럼 사랑이 필요 없을 만큼 부유한 사람도 없고 사랑을 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도 없습니다. 돈이 없으면 말로 위로하고 여유가 있으면 돈을 쓰기 바랍니다. 재물은 가족의 필요를 위해 쓰라고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가정과 교회를 위해 아낌 없이 쓰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또 채워주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시간과 재능과 재물을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였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핵가족 중심으로 교인들은 각자 알아서 살라는 식이 되었지만, 본래 교회는 서로 챙기고 돕고 나누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예루살렘교회를 보면, 물건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나누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자기 소유를 가지고 각자 알아서 살던 사람들이 예수 믿고 난 후부터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서로 나누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믿는 것이고 예수님의 경제 원칙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도움 받아야 할 형편보다 도울 수 있다는 것을 복으로 알고 감사한 마음으로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사는 진짜 그리스도인입니다. 

누가복음 12장을 보면, 예수님은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음이 있는 곳에 재물이 따라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녀에게 마음이 있으니까 자녀 교육을 위해 한 달에 수 백불을 쓰잖습니까? 좋은 차에 마음이 있으니까 차 값으로 수백불을 지출하지 않습니까? 집에 마음이 있으니까 수 천불을 쓰지 않습니까? 아직 차도 집도 없는 분들은 미래의 이야기로 듣기 바랍니다. 이렇게 마음이 있는 곳에 돈이 따라간다는 이야기입니다 . 여러분이 주님과 교회를 사랑하면, 목장과 교회 지체들을 더 살피고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을 마음과 물질로 도와주기 바랍니다. 저도 교회 차원에서 도움이 필요한 교우들을 돕는 일에 더 힘쓰겠습니다. 교우 여러분 모두,  한 주 동안 주의 사랑안에 따뜻한 한 주를 보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