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로 키우자

본문 : 신명기 6:4-9


본문 6,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하는 이 말씀을 첫째는 네 마음에 새기고, 둘째는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그럼 먼저 우리 마음에 새기고, 나아가 우리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야 할 하나님이 명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4,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다시 말하면 스스로 계신 하나님, 곧 여호와는 오직 하나이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알고, 그 분을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고, 우리 자녀가 그런 사람이 되도록 키워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모든 계명 중의 첫째 되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마태복음 22장 37-38절에서 언급하셨습니다.     
얼마 전 한국에 있는 한 자매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하며 기도를 부탁한다는 글을 보내왔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산부인과 의사로 예수님을 믿은 후 낙태를 하지 않겠다고 결단하였고, 그로 인해 병원 운영에 어려움을 겪자 개인 병원을 포기하고선 낙태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고 종합병원 과장으로 취업하여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오직 목자의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고 그 어떤 일보다 목자의 삶을 최우선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앙의 1대로 양가 부모님들에게 복음을 전해 부모님들 모두다 예수님을 영접하였으며, 그들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복이 자신의 자녀들로 내려가서 자자손손 예수쟁이가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아들과 딸, 두 자녀가 있는데 딸은 예수님을 믿고 신앙 안에서 기쁘게 열심히 주를 섬기며 살고 있지만 아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반항하다 고통 가운데서 돌이키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던 자매는 그래도 사랑하는 자식이니 하나님께서 큰 고난 없이 그 마음을 어루만지시어 머리로서가 아니라 가슴으로 복음에 반응하게 되기를 기도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글을 읽고 제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그리스도인 부모에게 가장 큰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허락하신 자녀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 때문에 행복하고, 자유하고, 평화롭고, 소망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지나친 경쟁과 그릇된 자본주의, 그리고 이기주의가 팽배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자녀들을 생각할 때 조바심과 염려로 아마 밤잠을 못 이룰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의 삶의 변화를 위해 아마 힘 닿는 범위 내에서 모든 것을 시도해 보았을 것입니다. 훈계도 하고, 애원도 하고, 배후를 조정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뇌물을 쓰고, 눈물로 기도도 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 고집스런 행동을 고치지 않는 자녀들을 보며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도 직면해 보았을 것입니다. 
저 역시 하나님의 교회를 맡은 목회자로 살아가지만 자녀들의 신앙에 대해 일차적인 책임이 있어서 자녀들이 하나님의 경외하며 바르게 살아가기를 그들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 것보다 더 간절히 원하여 기도 때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2주 전에 목사님 부부 모임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목회자로서의 삶을 살아오면서 뛰어나게 잘한 것도 없고, 자녀들에게 이렇다 할 만큼 잘해 준 것도 없지만 이만큼의 인생을 살고 보니 그래도 자녀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부모로서의 삶 가운데 가장 감사하고 기쁜 일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했습니다. 부모가 목회자로, 선교사로, 교회의 중요한 직분을 맡은 자로서의 삶을 산다고 자녀들이 모두 다 똑 같이 그런 삶을 살아주면 너무 좋고 감사한데 현실 속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도 종종 있어서 부모들의 아픔이 되기도 합니다. 아마도 가슴 속에 모난 돌덩이 하나를 끌어 안고 살아가는 느낌일 것입니다. 
  성경에도 믿음의 사람들 중 자녀교육에 실패한 사람들이 예가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백성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제사장이었지만 자녀교육에는 실패했던 사람입니다.”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삼상2:12). 그 결과 엘리 제사장의 집안은 완전히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도 자녀교육에는 실패했다고 사무엘상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들이 그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삼상8:3). 더욱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 왕 역시 자녀교육에는 실패했습니다. 열왕기상.하를 보면 다윗 왕이 자녀 때문에 백성 앞에서 얼마나 큰 수치를 당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이 온전해지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녀를 신앙으로 양육하고자 함에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가정에서의 모든 일의 시작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자녀양육을 제쳐놓고 회사 일이나 집안일 등 다른 일로 너무 바쁘게 살아선 안될 것입니다. 좀 지나친 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 앞에서 우리의 삶에 대한 평가가 우리 자녀들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시편 127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렇습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기업이요, 유산이요, 가장 위대한 선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이며, 항상 감사와 감격의 마음으로 자녀를 양육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마치 젊은 장수의 손에 들려진 화살이 그가 쏘는 대로 나아가듯이 젊은 부모에게는 맡겨진 자녀들의 생의 방향 설정과 목표 설정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뜻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가치관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옳은 것이 틀린 것이 될 수 있고, 틀린 것이 옳을 수도 있습니다. 그 한 예로 많은 아이들이 부모를 거역하는 것, 학교를 자퇴하는 것, 임신 등을 멋진 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의 정당성을 말하기 위해 “다른 아이들도 다 하고 있어요” 라고 말합니다. 아이들의 눈에는 모든 사람이 다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삶의 방식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왜곡된 가치관과 잘못된 현실 감각을 갖게 됩니다. 
 그런 자녀들을 부모 된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가라고 가리키고 있습니까? 세상이 추구하는 방식에 편승하여 그래도 사회에서 뒤쳐지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하려고 조종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과 주님의 성품을 닮는 자녀가 되는 것을 목표로 ‘자녀’라는 화살을 당기고 있습니까?    또 아니면 아직 방향을 결정하지 못하고 그 중간에서 머뭇거리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무리 자녀가 나이가 들었어도 부모 앞에서는 항상 자녀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90이 넘은 어머니이라 할지라도 70이 된 아들을 보면 여전히 아이와 같이 돌보아주어야 할 대상으로 느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 부모가 자녀에 대해 그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자녀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발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나이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그 자녀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라는 생각을 가질 때 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통하여 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그 자녀가 하나님의 의도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전심으로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장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사람들에 대해서 모든 것을 말하려면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들이 “나라를 이기기도 하며…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라고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선배들의 놀라운 행적을 읽을 때 아마도 대부분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그렇게 할 수 있지만 나와 나의 자녀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야.” 어떻습니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께서 히브리서 기자를 통해 우리에게 열등감과 패배의식을 심어 주거나 아니면 그런 일들은 불가능한 일이니 아예 시도조차 하지 말라고 경고하기 위해서 그 글을 기록한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을 기록한 이유는 어린이나 어른이나 모든 믿는 자에게는 이런 일들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입니다. 그들이 세상이 감당치 못할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능력에 힘입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눅1:37).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인물들 중의 대부분은 어렸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한 번 살펴 볼까요? 
  사무엘은 태 속에서부터 어머니 한나에 의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되었습니다. 젖을 떼고는 하나님의 성전에 머물며 신앙 교육을 받았고, 소년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순종하여 왕들과 나라를 위한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내가 복 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렘1:5)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이 어디든지 갔으며,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이든지 선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이 소년이었을 때 아무도 용기를 내어 골리앗과 싸우려고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자원해서 싸우겠다고 나섰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는 담대한 믿음으로 결국 골리앗은 다윗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요셉은 십대의 나이에 그의 백성의 지도자가 되는 신기한 꿈을 꾸게 되어 그의 부모와 형제들에게 자신이 그들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는 꿈 내용을 말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그의 형제들은 시기심에 동생 요셉을 17세 나이에 노예로 팔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젊은 요셉은 결국 이방 땅에서 총리가 되어 이스라엘을 확장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게 되었습니다(창37-50장). 
에스더는 유대인으로서 젊은 나이에 페르시아 왕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 나라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처음에 그녀는 자신이 유대인 신분임을 밝히지 않았지만 자신의 백성이 위험에 처해졌을 때, 죽음을 무릅쓰고 왕 앞에 나가서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자신의 백성들을 위해 자비를 구했습니다. 
요시야는 여덟 살의 나이에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안이가 나라를 다스린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상상이 됩니까? 물론 요시야는 처음에는 외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하였다”(역하34-35장)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스무 살이 되었을 쯤에는 주변의 반대와 압력에도 불구하고 유다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신앙을 통해 비전과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나라를 현명하게 다스린 매우 훌륭한 왕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납치를 당해 외국에 팔렸어도 하나님께 헌신되어 죽음을 무릅쓰고 이방 신에 절하는 것을 거절한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 15세의 나이에 아버지의 버림을 받고 어머니와 함께 광야로 쫓겨나서 죽을 수 밖에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다해 어머니를 돌보며 꿋꿋하게 살아남아 후에 큰 민족의 조상이 된 이스마엘, 태어나기도 전부터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받아 짧은 생이지만 사명에 충실한 삶을 살았기에 이 땅에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는 칭찬을 받은 침례 요한 …등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어렸을 때, 혹은 젊었을 때 택하시고 부르시어 이들을 왕, 여왕, 군사 지도자, 용사, 모사, 영적 지도자, 그리고 국가의 영웅이 되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젊은이들은 처음부터 특별한 재능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부유하거나 뛰어난 외모를 가진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위대하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자녀들도 이들처럼 부르실 수 있고, 부르신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어떻습니까?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이들의 장성한 모습을 보기 때문에 이들이 어린아이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고는 별로 생각하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우리들보다 훨씬 더 믿음이 성숙했을 때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일을 했을 것이라 여겨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는 믿음이 더 많이 성장한 다음에 해야 한다고들 생각합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생각이 그러하니 현재의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서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고려하고 있지 못합니다. 어쩌면 사명자의 삶이 고난의 삶이니 할 수만 있으면 사명자의 길을 가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부모들도 혹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부모인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자녀들에 대해 중요한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믿으십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에 부모인 우리가 간섭하기보다는 그것에 동참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계획에 부모가 동참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기도입니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야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서 기도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우리의 자녀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도록 지원해 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다음의 몇 가지를 부모인 우리가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1. 자녀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자녀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훌륭하게 창조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자녀가 하나님의 시각에서 특별한 일을 위해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고 예정된 존재라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통찰력을 가질 때 우리는 자녀들의 가장 훌륭한 지지자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곤경에 빠질 때 그들의 피난처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2. 자녀가 인생의 경주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의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왜 그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적인 상황으로 바꾸어 주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질 때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삶은 놀랍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자녀들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릴 때 우리는 자녀들에게 희망적인 꿈과 비전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3. 자녀를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양육하려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때로 우리는 자녀 양육에 실패했다고 낙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크든 작든 자녀들의 결점만 바라보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로 인해 자녀들의 영적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못하는 상황일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또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양육하려는 용기를 가진다면 우리의 문제뿐 아니라 자녀들의 삶에서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늘푸른 교회 부모 된, 그리고 앞으로 부모가 될 형제 자매 여러분,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찾으라. 그리하면 하나님이 목적과 의미가 있는 삶을 살도록 축복하실 것이다. 둘째, 하나님 없이 살아라. 그리하면 인생이 궁극적으로 무의미해질 것이다.” 
  정말로 여러분의 자녀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원합니까? 영적인 것에 관심을 갖고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머물기를 원합니까?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길 원합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자녀들이 현재의 상태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상태로 변화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집시다. 우리의 자녀들의 영적인 삶을 위해 우리의 기도를 제한하지는 맙시다. 우리의 자녀들이 성화 되도록 수고를 아끼지 않겠다는 용기를 가십시다. 그리고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달라도 아이를 키우는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꼭 기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