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는 드리는 것

요한4:20-24
예배는 드리는 것 

오늘은 요한복음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를 통해 예배가 무엇인지,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중에는 예배라는 말이 여덟 번이나 나옵니다. 그래서 본문은 예배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구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사장이나 바리새파 유대인이 아닌 사마리아 여인, 그것도 유대인이라면 상대도 하지 않는 그런 과거가 있는 사마리아 여인과 예배에 관해 이렇게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셨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어쩌면 지금도 목사나 신부, 장로와 집사, 믿음 좋다는 소리를 듣는 교인들보다 우리가 영적으로 불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주님과 더 가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인들 대부분은 무언가 얻으려고 교회에 갑니다. 이걸 좋은 말로 은혜라고 말합니다. 은혜 받으러 교회와서 예배를 드리는 경우, 예배 중에 은혜받지 못하면 실망하고 그 탓을 누구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싶어할 겁니다. 예를 들어, 오늘 목사님 설교가 은혜가 안된다고 불평하는 교인들이 있을 지 모릅니다. 찬양이 감동이 없다고 실망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다른 교인들이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다른 교회에 다닐까 고민하는 사람도 있을 지 모릅니다. 이런 현상은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자기를 만족시키는 예배를 원할 때 생겨나는 부작용입니다 

바른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예배가 무엇인지, 예배의 목적은 무엇인지부터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예배는 무엇보다 드리는 것임을 유념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받기 위해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고 드리기 위해  가는 것입니다. 예배는 받는 것이 먼저가 아니고 드리는 것이 먼저입니다.  또한 예배는 복과 은혜를 얻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영광을 돌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경배를 올리면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자들에게 복과 은혜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예배라는 말에 사용된 신약용어 ‘프로스쿠네오’ 는 “~에게 키스하다, 절하다, 엎드리다”는 뜻을 가지고 있답니다. 예배는 존경, 경외심을 가지고 최상의 존재 앞에 엎드려 절하는 것입니다. 이 개념을 기독교 예배에 적용하면 예배란 하나님의 이름과 성품에 합당한 영광을 드리며 존경과 경의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그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따라서 예배자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을 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예배를 위해 아무리 수고한 사람이 있더라도 그들이 드러나고 칭찬을 받고 높여지고 그러면 잘못된 예배입니다. 예배는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만 경배하는 시간입니다. 찬양을 듣고 감동해서 환호성과 함께 앵콜을 외치는 공연도 아니고, 설교를 듣고 감동해서 설교자에게  경의와 감사를 표현하는 강연도 아닙니다. 찬양과 설교는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을 존경하며 예배하도록 돕는 수단일 뿐입니다. 찬양하는 사람도 설교하는 사람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엎드려야 할 예배자일 뿐입니다.  찬양팀이 재주를 드러내며 청중들로부터 박수를 받아서는 안됩니다. 설교자가 회중들로부터 높임을 받아서도 안됩니다. 교회에서 어떤 직위나 직책을 맡고 있든지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 중에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울리는 것도 오직 하나님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만 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1차적 목적이 얻기 위한 것이면,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해도 잘못될 수 있습니다. 설교가 맘에 안든다, 찬양이 은혜롭지 못하다 예배 분위기가 맘에 안든다는 이런불평이 왜 생깁니까? 예배 시간에 자신을 드리는 헌신보다는 받으려는 욕심이 체워지지 않는 불만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교회를 옮겨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설교가 맘에 안든다고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교회를 옮기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는데 사실 그들은 진정한 예배자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배는 뭘 얻을까 보다 먼저 무엇을 드릴까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높이며 자신을 드리는 열망의 표현입니다. 예배는 여러분의 마음과 정성과 소유물을 주님께 드리는 시간입니다. 

나사로의 집에서 잔치를 할 때 마리아는 매우 비싼 향유를 부어 예수님 발을 씻겨드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요12:1-8). 이 때 유다는 그걸 팔면 삼백 데나리온을 받을 수 있고 그것으로 가난한 자들을 도와줄 수 있는데 왜 그렇게 허비하느냐고 책망했습니다.  가롯유다는 주님을 위해 쓰는 것을 허비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26장에도 한 여인이 향유 옥합을 가져와 깨뜨려 예수님 머리에 붓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님은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분들은 마리아의 행동을 참된 예배의 행위로 해석하기도합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받아주시고 구원해주신 은혜에 감사함 마음으로 값비싼 향유를 주님께 드렸습니다. 우리가 주일 마다 교회 나와 예배할 때도 이런 마음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반응으로 볼 때 예수님을 위해 드리는 것이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보다 더 잘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보다 헌금이 우선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엔 곳곳에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도 친히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곧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배가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이며 하나님이 받으시기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중 제1계명의 핵심은 오직 하나님만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단지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뜻이 아니고 오직 한 분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며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 한 분 만을 열망하는 것보다 다른 어떤 것을 더 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는 우상숭배가 될 수 있습니다. 때때로 재물, 성공, 건강, 사업, 자녀, 등이 우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어려분도 경험한 적이 있을지 모릅니다. 저도 지난 날  예배 중에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고 이런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예배 시간을 내가 원하는 것들을 얻게 해달라고 빌면서 예배를 끝낸 적이 적지 않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참으로 잘못된 예배였습니다. 

예배를 회복한다는 것은 단지 주일 예배에 빠짐 없이 참석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이 받으실 그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예배의 장소에 대해 묻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장소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시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은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은 어떻게 예배하는 것입니까? 무엇이 신령과 진정한 예배가 되게 합니까? 그것은 예배의 장소나 성전이나 희생제물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대한 믿음과 성령입니다. 우리 영혼이 믿음을 가지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NIV를 보면,  “신령과 진정으로”에서 신령은 ‘in spirit영으로’ ,  진정은 ‘in truth 진리 안에서’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진리라는 말은 진리의 성령, 진리의 말씀, 진리의 복음처럼, 성령과 말씀과 복음을 가리킬 때 사용됩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영과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은 영적으로 죽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으로 예배할 수 없습니다. 예수 믿고 거듭나서 사람의 영이 살아나야 영으로 드리는 예배가 가능한데, 죽은 우리 영을 살려주는 분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그 다음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대한 믿음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희생제물없이 제사를 드릴 수 없었던 것처럼 지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없이 하나님께 나가 예배할 수없습니다. 사람의 몸이 예배시간에 참석하고 있다고 해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없다면 그런 사람의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배 시간 마다복음이 선포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불신자 교인들이 믿음을 얻고 진정한 예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레위기11장 보면, 부정한 동물을 먹지 말라는 금지령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44절).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손상시킨 사람은 죽음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분향하다가 불에 타죽었습니다(레10장).다른 불이란 거룩하게 구별되지 않은 불이라는 뜻입니다. 제사는 거룩하게 구별된 제사장에게만 허용되었는데 사울왕은 급한 마음에 자신이 직접 번제를 드렸다가 하나님께 버림받는 이유가 되었습니다(삼상13장). 웃사는 짐마차로 언약궤를 옮기다가 수레가 덜컹거려 언약궤가 요동치자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손으로 잡았다고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역상13:10). 이런 일을 거울로 삼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손상시키는 일이 없도록 예배시간을 지키는 것부터 시작해서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기 바랍니다. 

말라기를 보면, 제사장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제사장은 눈멀고 저는 것으로 희생제물을 드리고 백성들은 희생제사를 드리기 위해 짐승을 성전으로 데려오는 것이 힘들고 귀찮은 일이라고 불평했는데, 하나님은 이것을 책망하신후(말1:6,13) 여호와를 경외하며 주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와 그렇게 하지 않는 자들을 분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말3:16,18). 교우 여러분, 예배 시간에 어떻게든 참석했다고 해서 주일을 지켰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예배자가 되기를 힘쓰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복을 받아 여러분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 되며 자녀들도 은혜를 받게 됩니다. 부모가 예배의 중요성을 모르고 소홀히 하면 자녀들이 그걸 보고 어떤 영향을 받겠습니까? 자녀를 둔 교우들은 자녀들의 신앙 생활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한 주간 전도에 힘쓰며 평안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