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잡아 세우는 사역

성경: 갈6:1-5   
제목: 바로잡아 세우는 사역 

지난 한달 동안 목자 사역기간에 여러 목자들이 좋은 말씀을 전해주어 감사드립니다. 설교를 듣는 입장에 있을 때 우리는 설교자가 누구든 주님 말씀을 전하고 듣는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설교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설교자의 직위나 지식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 그 자체입니다. 

목자사역기간 이전에 몇 번에 걸쳐서 갈라디아서를 본문으로 설교했습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 시간으로  갈라디아서6장에 근거하여 ‘바로 잡고 돌아보는 사역’ 이라는 제목으로 교인 중에 누가 하나님 말씀을 벗어나 잘못된 길로 갈 때 우리가 서로 바로 잡아주고 그럴 때 마다 우리 자신도 돌아보며 시험에 들지 않도록 조심하자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바울은 본문 1절에서  교인 중에 누가 어떤 범죄한 일이 들어났을 때 온유한 심령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 잡아주고 네 자신도 돌아보아 그런 죄의 유혹을 받아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두려운 마음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바울 사도는 같은 교회에 다니는 형제나 자매는 잘못을 모른척하지 말고 타이르고 챙겨주며 간섭하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이런 권면은 범죄한 형제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른 것으로 생각됩니다. 누가복음17장 3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경계한다는 말은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여 돌아서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18장15절이하에는 경계하는 방법이 좀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형제나 자매가 죄를 범한 사실을 가장 먼저 안 사람은 아무도 모르게 그 사람을 찾아가서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듣지 않을 경우는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같이 죄를 지적하고 돌이키도록 촉구하고, 그래도 듣지 않을 때는 교회에 알려서 공개적으로 회개를 촉구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아니하면 이방인과 세리 처럼 대하라고 하셨습니다. 

간섭받는 것을 싫어하고 사생활보호를 강조하는 오늘날 문화에서는 간섭하고 그러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 경험으로도 안 그러면 좋겠다 싶어서 몇 번 이야기 하면 어느 순간 멀리하는 게 느껴집니다. 고치려고 하는 게 아니고 그것에 대해 더 이상 말하려고 하지 않고 방문하는 것도 꺼리고 심한 경우는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어디까지 참견하고 간섭해야 할지 목사조차도 고민꺼리입니다. 제가 그러지 말라고 한 것에 대해 저나 제 자녀나 제 주변에서 틈이 보인다 싶으면 은근히 불편한 심사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저도 이런 경우를 한 두 번 겪고 나니까 간섭하기 싫고 그래서 알면서도 그냥 침묵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서로 어떻습니까? 
주님께서, 바울 사도께서 교인 중에 누가 어떤 범죄한 일이 들어났을 때 최대한 예의를 다해서 바로 잡도록 도와주라고 하신 것은 우선 그 당사자가 죄에서 떠나 생명의 길로 가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다음 교회를 몸으로 생각할 때 교인은 서로 연결된 지체라서 누가 죄를 범하면 거기서 끝나지 않고 다른 지체에게 나쁜 영향이 미쳐 죄가 교회에 스며들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한 사람의 죄로 가볍게 무시할 게 아니라 서로 경계하며 바로 세워 죄가 더 이상 교회를 무너지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발톱이 무좀이든 세균에 감염되었을 때 초기엔 연고나 항상제 몇 알로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방치해서 악화되면 발가락이나 발목을 잘라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서로 타이르고 바로 잡아 주라는 것입니다. 누가 그런 일을 해야 하는가는 일차적으로 그 사실을 먼저 알고 있는 사람이 일대일로, 한 두 사람과 함께 간섭하고 바로잡아주는 사랑의 수고를 해야 합니다. 거기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문제가 있는 양들에 대해서는 목장 멤버들이 목자 차원에서 도와 주고 바로잡아주고 그러는 게 결과적으로 가장 좋습니다. 그 선에서 해결이 안돼서 교회 전체로 알려지고 징계를 시행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고 그러면 좀 힘들어집니다. 주님과 바울 사도는 그래도 그 영혼과 교회를 위해 필요하면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잡는 일은 “어떤 범죄한 일이 들어났을 때”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죄를 범한 사실이 객관적으로 드러나 분명할 때 찾아가서 권면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 입장에서 어떤 것을 범죄로 봐야 할 것인지 그런 문제가 남습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규약에 명시해 놓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는 아직 규약에 범죄의 경우로 명시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성경의 일반적 가르침에 따라 몇 가지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갈라디아5장 19절 이하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육체의 일로 음행과 호색, 우상숭배(이단, 배교도 포함), 술수와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분리함과 당파를 만드는 것,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5절 이하를 보면, 재물에 대한 욕심과 거짓말도 열거되어 있습니다. 

죄가 되는 육체의 일로 언급된 항목이 대략15가지입니다. 물론 실 생활에서 범죄가 되는 경우는 이보다 훨씬 많겠지만, 늘푸른교회 교인중에 어느 누가 이 15가지 사례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것을 먼저 알 게 된 사람은 그를 위해 기도한 후 개인적으로 만나서 죄에서 떠나도록 권면하며 바로잡아주기 바랍니다. 허물을 지적하고 타이르는 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것이라도 피하고 싶은 일입니다. 숨기고 싶은 허물을 지적받을 때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래서 사실 우리도 지금까지 모른 척하고 지내는데 앞으로는 주 안에서 한 몸된 지체로서 사랑의 의무를 다합시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는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에게 이 바로잡아 세우는 사역을 맡겼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다윗 왕이라니! 선지자이지만 나단도 꽤나 고민을 한 것 같습니다. 다윗 왕을 찾아가서 밧세바의 일을 직접 꺼내지 못하고 어떤 부자가 가난한 사람의 양새끼를 빼앗아 자기 손님을 대접했다는 이야기로 다윗왕 스스로 죽어 마땅한 죄를 범했다는 것을 자인하게 만들어 뉘우치고 돌아오게 만들었습니다(삼하12:1-13). 그런 것처럼 남의 허물을 지적할 때는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며  지혜로운 말로 일깨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기도하며 지혜를 구하고 또 용기를 내서 영혼을 구하는 사역이라는 믿음으로 하기 바랍니다. 

교인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목회자보다 가까이 지내는 교인이 더 잘 압니다. 목자가 양들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는 것이 주님께 받은 직무이긴 하지만 요즘 양들은 목자가 자기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보는 것을 싫어합니다. 양들끼리는 서로 집으로 불러서 밥도 먹고 그러지만, 목사나 목자를 불러서 밥을 먹자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답니다. 심방하겠다고 해도 사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설교도 그냥 일방통행으로 되기 쉽습니다. 교인들 사정을 모르고 설교하는 게 편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가끔 나보고 설교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알면 사실은 그 사람이 신경쓰여 더 못합니다. 성령께서 convict해주시니까 그런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다음 주일까지 한 주 동안 가정과 학교와 직장에서 성령님과 동행하며 승리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