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

"재건" - 렘 17:5-8 / 31:31-33

성경을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하나로 꿰고 있는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다. 오늘 본문인 예레미아서 31장에 나오는 “새 언약”의 내용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전 언약을 알아야한다. 최근 우리 교회가 함께 읽고 있는 모세 5경의 토대가 되는 것이 바로 이 약속이다. 

(출 6:6-8)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이 약속의 핵심은 무엇일까? 

지금 이 언약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라는 말씀이 성경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신실하신 마음과 의지를 깨달았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해 그런 하나님을 만나기 원한다. 

[성막시대 -> 성전시대] 

지난 수양회 때 공부했던 압살롬은 결국 왕이 되지 못했다. 다윗의 왕위를 이어받은 것은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솔로몬이다. 솔로몬의 지혜로운 통치로 이스라엘에 전무후무한 부귀영화의 시대가 도래한다. 

열왕기상 6장은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장엄했던 솔로몬 성전이 건축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한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한지 480년이 되는 해에 드디어 성전 건축이 시작된다. 7년에 걸쳐 최고의 재료와 최고의 정성으로 성전 건축이 완성되어 갔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성막시대에서 성전시대로 넘어온다. 

성전 건축이 끝나고 성전 봉헌식이 열린다. 그리고 솔로몬은 기도한다. 

(열상 8:33-34) “만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함으로 적국의 땅에 사로잡혀 갈 때, 그들이 스스로 깨닫고 주께로 돌아와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의 조상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이 솔로몬의 기도는 주목해 볼 만하다. 마치 출애굽을 연상시키지만, 사실은 출바벨론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 

[남 유다, 북 이스라엘] 

열왕기상 9장 부터는 솔로몬의 죽음과 왕국의 분열이라는 뼈아픈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영광이 절정에 다다랐을때, 서서히 다가오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성전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며 내면의 성전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셨다. 하지만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더 사랑하고 의지하는 솔로몬의 모습이 점차 가시화된다. 

솔로몬 사후에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르고, 세겜에서 백성들과 첫 만남을 가진다. 이 자리에서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 회중은 멍에를 가볍게 해줄 것을 요청하지만, 어리석게도 르호보암은 백성들의 멍에를 더 무겁게 하는 정책을 편다. 

이 일로 인해서 이스라엘 왕국은 분열이라는 아픔을 겪는다. 북쪽의 열 지파는 여로보암을 따라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고, 남쪽의 르호보암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중심으로 명맥을 유지한다. 이것이 바로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이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시작부터 결정적인 범죄로 삐걱거리는데, 바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것. 그리고 계속해서 악한 왕들이 일어났다. 결국 호세아 왕을 끝으로 주전 722년 앗수르에 멸망 당한다. 

당시 남 왕국 유다는 잔존하였지만, 이미 영적으로 불순종과 우상숭배로 망해버린 상태였다. 사실 하나님은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백성들에게 죄악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이방나라에 의해 징계를 받을 것이라고 계속해서 말씀 해 오셨다. 그리고 그들의 조상들을 출애굽 시키신 것 처럼, 그들을 출바벨론 시키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그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회복시키시는 방법이였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고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치. 

예레미야 선지자는 서서히 멸망의 길을 걸어가는 남 유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선포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계신 성전은 무너지지 않으며 예루살렘은 함락되지 않으리라는 유대인들의 헛된 희망을 부정한다. 그래서 바벨론에게 항복하고 그곳에 유배를 당해 끌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라고 역설한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절망만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렘 29:10-1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 구절은 우리에게 익숙한 말씀인데, 그 말씀이 선포된 상황과 배경,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끈질긴, 신실하신 사랑의 약속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렘 30:22)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렘 31:31-3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이처럼 성경은 언약으로 시작해서 언약으로 마친다. 옛 언약은 돌판에 새긴 율법을 사람의 행위로 성취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한다. 새 언약은 예수님을 믿는 마음판에 새겨진 복음을 은혜로 받아드릴 때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한다. 

예레미야서는 결국 예레미야의 예언이 그대로 실행됐음을 기록하며 끝난다. 예루살렘 성벽은 파괴되고 성전과 왕궁 역시 불탔으며,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 유다가 135년을 더 버틴것인지, 하나님이 그 만큼 더 참아주신 것인지 모르겠다. 

[하나님의 본심] 

예레미아애가는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함락된 것을 보고 예레미아 선지자가 지은 다섯 편의 애통해하는 노래다 

그러나 고통만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3: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이제 하나님의 본심, 하나님의 진짜 속마음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마른 뼈가 살아나고] 

에스겔서는 유다가 패망한 주전 586년을 전후로 해서 23년여에 걸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에스겔은 바벨론 2차포로 때 끌려와 가장 절망스러운 삶 가운데서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에게 환상을 통해 친히 말씀을 먹여 주신다. 슬픔과 고통, 그리고 심판의 말이 기록된 두루마리 책이었다. 하지만 에스겔이 환상중에 그 두루마리 책을 먹었을 때 마치 꿀처럼 달게 느껴졌다. 바로 하나님의 본심을 알았기 때문이다. 

에스겔서 뿐만 아니라 다른 선지서들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메세지로 가득 찬 것을 보면 당혹스럽기까지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예루살렘을 향해 쏟아지는 하나님의 진노는 그들을 향한 사랑의 반증이라는 것이다. 

에스겔서의 마지막 부분에는 마른 뼈 환상이 나온다. 

여호와의 영이 에스겔에게 임해 그를 이끌고 마른 뼈들이 가득한 골짜기로 데려 가신다. 에스겔이 마른 뼈를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뼈들이 저로 연결돼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가죽이 덮이는 역사가 일어난다. 그리고 여호와의 생기가 들어가자, 곧 살아 일어서서 큰 군대가 된다. 하나님은 이 뼈들이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하시며 "내 영을 그 속에 두어 살아나게 하리라"고 약속하신다. 

우리도 이 하나님의 영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복을 누리자. 

[이주대책] 

사람이 패역해 하나님께 범죄하면 어떻게 다시 새롭게 할 수 있을까? 건물을 아름답게 새워서 오랜 기간 사용하다가 낡고 흉해지면 헐어 버리고 재건축하는 방법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서 바벨론에 임시 성소를 세우시고 성전 재건축 이주 대책을 진행하신다. 

그렇게 하나님은 완전히 폐허가 된 유다와 예루살렘에 소망의 씨앗이 싹을 틔우게 하셨다. 바벨론을 점령한 바사제국의 고레스 왕이 유대인들에게 고향에 돌아가 다시 나라를 건설하라는 칙령을 반포한 것이다. 

바벨론 포로 70년 후에 1차로 귀환한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약 5만명의 백성과 함께 성전 재건을 시작한다. 

[역대기] 

역대기는 이렇게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을 대상으로 기록한 책이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피폐한 예루살렘의 상황을 보며 낙망하기도 하고, 무너진 성전으로 인해 신앙적으로 방황하기도 했다. 그러한 때 다윗 언약을 상기시키면서 성전 중심의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 학사 겸 제사장이었던 에스라가 기록한 것으로 보고있다. 

역대기는 첫장부터 장대한 계보가 (9장) 이어지기에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지루함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하지만 이 계보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이 결코 바벨론에서 떨어져나와 세상에 던져진 그저 하나의 소수 민족이 아니라는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또한 이 족보를 통해 포로 귀환자들은 하나님께 선택 받은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다시 가지게 된다. 

역대기는 열왕기와는 다른 관점에서 기술되고 있다. 

첫째, 역대기는 솔로몬의 성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수백 년 전에 있었던 다윗과 솔로몬의 영광이 지금 옛 땅으로 돌아온 포로 귀환자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역대기는 이 의미를 조명하기 위해 솔로몬의 통치 내용보다 성전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둘째, 열왕기에서는 왕들의 죄와 허물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만, 역대기는 덮어준다. 정욕으로 밧세바를 범한 다윗의 허물을 덮어준다. 또 탐심으로 우상을 범한 솔로몬의 허물도 덮어준다. 이것을 읽으면서 당시 포로귀환 백성들이나 오늘날 우리들도 용서하시고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 수 있다. 

셋째, 역대기는 구원 역사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북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고 남 왕국 유다의 역사만을 기록한다. 사울에 대해서도 모두 생략되고, 오직 그가 여호와께 죄를 범했기 때문에 버림 받았음이 강조된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복하지 않는 자는 왕으로 세워졌다 하더라도, 결국 버림을 당하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귀환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지 않으면 어떤 결말이 임하는지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성전 재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은 귀환 즉시 성전을 재건하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마리아인들의 반발과 방해 공작에 막혀 공사가 중단된다. 그러자 백성들은 이방인들과 다름이 없는 일상적인 고민에 휩싸이면서 죽음과도 같은 신앙의 침체에 빠지게 된다. 

여호와의 성전은 무너진 채로 황폐했는데,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은 자기 집 짓기에 급급했다. 하나님이 최우선이 아니라 뒷전으로 밀려난 것. 이 때 선지자 학개는 성전 재건축 추진을 위해 백성들을 격려한다. 

(학2:4) "..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하노라” 

스가랴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형식적인 종교 생활에서 벗어나,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으로서의 삶을 회복하라고 간곡히 당부하신다. 

이렇게 백성들을 다시 일어서게 한 힘은 선지자들이 대언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왔다. 

[율법 재건] 

유다 백성들은 성전을 완공하게 된다. 하지만 성전 건물이 다시 세워진 것만으로 신앙 공동체의 모습을 확립할 수 없었다. 하나님 말씀이 그들 가운데 분명하게 서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바로 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율법에 정통한 에스라를 통해 유다 백성에게 말씀을 가르치게 하셨다. 

에스라는 모든 백성들 앞에서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해 백성들이 깨닫게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백성들에게서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다. 모든 백성이 일어서서 말씀마다 아멘으로 화답하며,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을 경배했다. 말씀을 깨닫고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고, 금식하며 자신들의 죄와 허물을 자복했다. 이것이 말씀을 들을 때 일어나는 영적 부흥이다. 

앞서 말했던 성전 재건이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 회복이라면, 율법 재건은 하나님의 말씀의 실천 회복이다. 

에스라의 율법 재건으로 인해 백성들이 말씀의 빛 앞에 나가게 되자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유다 백성들이 그동안 이방 민족과 통혼했던 것이 하나님 앞에서 심각한 범죄로 드러난 것이다. 이를 알고 충격에 휩싸인 에스라는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고 통회하며, 동시에 백성들에게 이방인 아내와 자녀들까지도 내보내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이것은 곧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나는 신앙부흥의 밑거름이자 불씨가 됐다. 성전 재건도, 신앙 부흥도 모두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에 대한 적극적인 순종을 통해 가능했다. 우리의 신앙생활과 교회 공동체에도 이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겠다. 

[성벽 재건] 

느헤미야는 70년이란 긴 세월동안 황무하게 버려졌던 예루살렘 성벽을 단 52일 만에 재건한 사람이다. 

고대 시대에 성벽이 없는 도성은 적의 침입에 아무런 방어 대책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였다. 성벽의 유무는 그 도성의 존폐 여부에 큰 영향을 끼친다. 성벽은 외부의 적을 막아 내고, 내부의 결속을 한층 강화시키며, 역사와 전통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과정도 성전 재건때와 마찬가지로 순조롭게만 진행되지는 않았다. 이스라엘의 부흥을 시기하는 이방 사람 산발랏과 도비야, 기셈의 방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방해 세력이 느헤미야의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강했던 이유는 성벽 재건이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한 영적 싸움이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공격에 대비해 한 손으로는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다. 우리도 양손에 믿음의 방패와 말씀의 검이 들려있어야 하겠다. 

[물가에 심어진 나무] 

지금까지 바벨론에게 멸망했던 남 왕국 유다의 역사를 돌아보았다. 세 차례에 걸쳐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은 1차 귀환 때 성전을 재건 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써의 정체성을 회복했다. 2차 귀환 때 율법을 재건 함으로 말씀을 회복했다. 3차 귀환 때 성벽을 재건 함으로 거룩을 회복했다. 

우리도 오늘 말씀을 통하여 다시 세우시고 회복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기 원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약속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기 원한다. 

이렇게 하나님 안에서 다시 지어지고 다시 회복된 백성들의 모습을 예레미아 선지자는 보여주고 있다. 

(렘 17:7-8)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물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하나님 안에 심어진 늘푸른 교회와 우리들의 삶이 어떤 모습으로 자라날지 기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