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 편에 서있는가?

열왕기상1:28-35 / 나는 누구편에 서있는가? 

최근 박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고 관계 증진에 힘쓰는 모습을 봤습니다. 미국 방문하기 전에 중국 전승기념식에 먼저 참석했는데, 그걸 가지고 한국이 중국으로 좀 기우는 것 아닌가 국내외로 논란도 좀 있었습니다. 북한 때문에 중국관계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과 사이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서 있어야 하는지 참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앞으로도 국가 안보를 생각하며 신중하게 대처해야 할 겁니다. 

요즘 한국엔 이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나라 역사를 나쁘게 말하는 걸 무슨 자랑거리라도 되는 것처럼 착각하고 막말을 해댑니다. 이들은 남한 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면서북한의 김일성은 뭐 잘할 게 있다고 미화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 국가주도로 국사교과서를 만들겠다고 하니까 이걸 반대하면서 국사 집필진에 참여하지도 않고 별도로 국사참고서를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치겠다고 한답니다. 전 물론 국정교과서가 최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지금처럼 왜곡된 국사교과서가 제멋대로 활개치게 놔둬선 안될 것 같습니다. 

사실 어느나라든지 국사는 객관적이기 어렵습니다. 사건에 대한 해석이 첨가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든 자기 역사는 약간 미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의 역사서를 봐도 그런 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열왕기와 역대기를 비교해보면, 열왕기에는 다윗왕이 밧세바를 범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지만, 역대기엔 그 기록이 빠져있습니다. 다윗과 그 아들들이 왕이 되어 통치한 유다 왕국의 정통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그랬을 것이라고 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비길 자가 없을 만큼 훌륭한 왕으로 평가받습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섬겼고, 재위 기간 동안 다윗은 사울왕 때보다 훨씬 강력하고 큰 부국강병의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주변 나라를 평정해 영토를 확장시키고  조공을 받아 금을 은처럼 흔하게 쓸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말기에 권력 승계에 대해서는 잘 대처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보통 왕이 나이들어  거동하기 힘들 때가 되면 왕위를 계승할 왕자로 하여금 정무를 대리하도록 위임합니다. 이것을 섭정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다윗왕은 나이들어 정무를 보기 어려우면서도 왕자 중에 누구에게 대신 정무를 보라고 하지도 않았고 왕자중 누구에게 왕위를 계승해줄지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상 첫번째 왕자가 된 아도니야가 계승자처럼 행동하며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아도니야가 계승자처럼 행세하며 마치 왕이라도 된 듯 호위병을 거느리며 위세를 떨어도 다윗왕이 책망하지 않고 그냥 놔뒀다는 것인데,  왕이전에 아버지로서 다윗은 자녀 교육에 그렇게 성공한 케이스는 아닌 듯 보입니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도 없지만,  완전한 아버지도 없다는 걸 여기서도 알 수 있습니다. 잠언에 종을 너무 잘 해주면 아들인체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도니야가 왕처럼 행세해도 가만 놔두니까 이젠 왕이 된 착각에 빠져 아버지 다윗왕은 안중에도 없어졌습니다.  나단이 밧세바에게 한 말을 보면, 아도니야가 모든 왕자들과 대신들을 불러 잔치를 벌이며 “이제부터 내가 왕이다” 고 선언했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나단은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습니다.  아도니야가 왕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급하게 밧세바를 찾아가 빨리 다윗왕을 찾아뵙고 전에 약속하신 데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운다는 조서를 받으라고 조언했습니다. 왕궁의 생리를 잘 아는 나단이 보기에 아도니야가 왕이 되면 솔로몬과 밧세바, 그리고 솔로몬을 지지하던 사람들을 가만 두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는 밧세바에게 “마님의 목숨과 마님의 아들 솔로몬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좋은 계획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말했습니다(11절). 

좋은 계획이란 다윗왕을 찾아가 솔로몬을 왕으로 삼겠다고 하나님께 한 맹세를 상기시켜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려는 것을 막고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나단도 생명을 걸고 하는 말입니다. 나단의 계획이 실패하고 아도니야가 왕이 되면 가만 두겠습니까? 그런데 나단은 왜 전면에 나섰을까요? 추정이긴하지만, 나단은 인물됨이나 성품으로 볼 때 아도니야보다는 솔로몬이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왕으로 더 적임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만일 솔로몬이 망나니 같은 왕자였다면 다윗왕의 맹세가 있었다고 해도 죽음을 각오하고 솔로몬 옹립에 앞장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왕궁 예언자로서 나단은 아도니야와 솔로몬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당장 취업하고 승진하고 그러는데는 인품보다는 학벌이나 기술 이런 것이 더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리더 그룹으로 올라간 후엔 가진 지식이나 재능보다 어떤 사람인가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때가 되어 늘푸른교회 후임 목사를 선정하려고 할 때 신학박사인지, 설교를 얼마나 잘하는지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윗처럼 하나님께 충성된 사람인지, 자기 명예나 이익보다 교회와 교인들을 더 생각하며 위하는 목자인지 그런 자질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기업처럼 크게 키우는 것만 생각한다면 어떤 평가를 받든 유능한 CEO형 목사가 좋겠지만, 그런 교회는 결국 언젠가는 분열하고 무너지고 교인들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유능한 사람이 되는 것과 함께 좋은 성품을 기르는 일에도 힘쓰기 바랍니다. 그래 
야 오랫동안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 뇌물이 통하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도니야는 9절에 언급된 것처럼, 양과 소와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를 베풀어 왕자들과 대신들을 불러다 먹이며 자기를 지지하도록 유도했습니다.그 다음19절을 보면, 아도니야는 소와 송아지와 양을 많이 잡아 제사도 드렸다고 나옵니다. 여러분은 아도니야가 왜 제사를 드렸다고 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랬을까요? 그가 만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이렇게 제 맘대로 후계자처럼 행세하고 다니다가 결국에는 스스로 왕이라고 선언할 수 있겠습니까? 아도니야의 제사는 말하자면 하나님께 뇌물을 먹이는 것에 다를 게 없습니다. 

뇌물이라는 게 묘한 측면이 있습니다. 뇌물 쓰는 사람은 뇌물이라고 안하고 감사의 표현이라고 합니다. 어째거나 그걸 받고나면  반대하기 어렵습니다. 7절 보면, 대장군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도 아도니야에게 포섭되어 그를 지지하게 되었다고 나옵니다. 뭘로 포섭을 했겠습니까? 두 가집니다. 돈 아니면 권력을 나눠주는 것이죠. 아도니야는 하나님도 그런 식으로 자기 편이 되게 하려고 제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내편으로 만들어 이득을 얻으려는 마음으로 예배드리고 기도하면 안됩니다. 아버지 유산을 노리고 효도하는 척하는 나쁜 자녀와 다를 게 없습니다. 

아도니야가 이렇게 제사를 드렸지만, 결국 하나님은 아도니야 편을 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나단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아도니야가 후계자처럼 행세할 때까지도 가만 두고 보던 나단은 스스로 왕이 되었다고 선언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발빠르게 움직여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도록 밧세바를 통해 다윗왕을 설득했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지만,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과정엔 사람들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는 나단과 밧세바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나단이 그냥 가만 있었다면 아마도 아도니야가 왕권을 잡았을 지도 모릅니다. 나단이 제빠르게 움직여 어떻게 하면 좋을 지 밧세바에게 조언해서 다윗왕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밧세바에 대해서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사실 알려진 게 없습니다. 다윗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넘어갈 만큼 외모로는 매력적인 여인이었을 것으로 추측되긴 하지만 인품이나 재능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그런데 밧세바가 다윗왕을 찾아가 한 말을 보면 상당한 지혜와 용기와 언변을 겸비한 여인으로 보입니다.  밧세바는 다윗왕께 최대한 예의를 다해서 왕으로 마땅히 알아야 할 사실을 알지 못하고 해야 할 일을 지금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있다는 자각하게 한 후 스스로 왕이 된 아도니야의 무례함과 그것이 왕의 뜻이 아니라는 사실을 은연 중에 드러나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밧세바를 통해 윗 사람을 대할 때의 공손함과 말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끝으로 다윗왕의 명을 받아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는 책무를 수행한 사독 제사장과 나단 선지자와 브나야와 함께한 무리들의 용기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제가 이들의 행동을 용기라고 말하는 것은 다윗 왕의 명을 받드는 것이긴 하지만, 이것은 아도니야와 함께한 무리들과는 적이 되는 것입니다. 당시 나라의 군권을 한 손에 쥐고 있던 요압이 아도니야를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요압이 어떤 인물입니까? 그는 온 이스라엘 군대 사령관이었습니다(삼하20:23). 다윗왕이 반역한 아들 압살롬을 죽이지는 말라고 했는데도 요압은 후환을 없애려고 압살롬을 죽였습니다. 후에 다윗왕이 이걸 알고도 요압에게 싫은 소리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요압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 왕의 명을 받들어 솔로몬에게 왕위 계승절차를 수행하는 것은 아도니야보다 요압 총사령관의 반격을 받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독과 나단과 브나야는 왕명을 받들어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전세를 바꿔놓았습니다. 

아도니야를 지지한 사람들과 솔로몬을 지지한 사람들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아도니야 편에 섰던 아비아달 제사장은 고향 아나돗으로 쫓겨가고 사독이 대신 단독 제사장직을 이어받았습니다(왕상2:26). 이 소식을 듣고 위기의식을 느낀 요압은 주님의 장막으로 도망했지만 거기서 브나야에게 죽임을 당하고 브나야가 요압 대신 총사령관직을 이어받았습니다. 

사독과 요압이 실패한 이유는 자기들이 섬기는 주인의 뜻을 헤아리지 않고 자기들 이익을 염두에 두고 행동한 것입니다. 제사장으로서 사독은 자신의 주인되신 하나님의 뜻이 아도니야와 솔로몬 중 누구에게 있는지 신중하게 헤아려야 했습니다. 요압 역시 주군인 다윗왕이 아들 중에 누구를 왕으로 세울 것인지 명을 내릴 때까지 중립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자기들 소견에 좋은 데로 아도니야를 지지하다가 인생을 망치고 만 것입니다. 사독과 브나야와 나단과 그 외에 다윗을 따르던 장군들은 아도니야의 포섭에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다윗왕의 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왕을 섬기는 신하나 참모라면 그래야 마땅합니다.  설령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다고 해도 다윗왕께 끝까지 충성하는 것은 허물이 아니지만, 다윗왕이 생존 중인데도 반역과 다름없는 아도니야 편에 선 것은 사실 자기 권력을 탐한 행위이고 요즘말로 자기 정치를 하다가 망한 꼴입니다. 여러분도 어디서 어떤 자리에 있든 하나님과 사람에게 충성을 다하여 믿을 수 있고 귀한 일에 쓰임받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