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니야의 반역과 최후

열왕기상1:5-10;49-53
아도니야의 반역과 최후 

오늘부터 열왕기를 중심으로 주일에 설교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열왕기에는 이스라엘 여러 왕들이 어떻게 왕이 되고, 왕이 된 후에 어떤 정치를 했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왕도 아니고, 왕이 통치하는 그런 나라도 아니어서 열왕기의 내용을 우리 삶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고 어떻게 평가하셨는지 살펴보며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법을 깨닫고 우리 삶에 유익한 교훈들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 목적을 가지고 열왕기를 강해하겠습니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해를 돕기 위해 이스라엘의 역사를 간단하게 살펴봅시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에 따라 세워진 나라였습니다. 그 언약이란 창세기12장에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을 떠나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서 살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그 언약의 씨로 이삭이 태어나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12아들을 낳았는데, 그들이 애굽에 내려가  430년을 지내면서 거의 200만명의 인구로 늘어났습니다. 이들이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후 마침내 가나안을 정복해 각지파별로 정착해 살면서 세운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12지파가 가나안에 정착한 직후는 아직 왕정 통치가 아니었습니다. 기초적인 행정 사법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12지파 자치공동체였습니다. 그러다가 외적이 침입해오는 등 어떤 위기적 상황이 오면  하나님은 사법권과 군권을 동시에 수행하며 백성들을 보호하도록 사사로 불린 리더를 세우셨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사무엘이 바로 그 마지막 사사였습니다. 
  
군사지도자였던 사사들이 통치한 기간은 대략 400년 정도였습니다. 그러니까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사사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산 것입니다. 이것을 신정통치라고 부릅니다. 백성들은 이 신정통치에 대해 한 가지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외적이 침입해 오면 자기들이 직접 나가 싸워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변 이방 나라들처럼 왕이 있고, 왕이 병사들을 길러서 그들이 자기들 대신 전쟁을 해주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장로들이 사무엘을 찾아가서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사무엘은 왕을 세워달라는 요구가 사사인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져 못마땅했지만, 하나님은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사울을 초대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 때가 BC1050년경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은 사사가 12지파공동체를 이끌던 시대를 끝내고 역사상 처음으로 왕정시대를 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정시대는 통일왕국시대와 분열왕국시대로 구분됩니다. 초대 사울왕부터 그 다음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까지는 한 명의 왕이 12지파 전체를 통치한 때를 통일왕국시대라고 하며 BC1050년부터 BC930년까지입니다. 솔로몬 사후에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되는데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지지해 왕으로 세웠는데, 그것이  남쪽 유다왕국이고 나머지 10지파는 세금과 공역을 가볍게 해달라는 요구를 거절한 르호보암을 거부하고 노역 감독관이었던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했는데 그것이 북왕국이스라엘이었습니다. 남왕국 유다는 BC931년부터 BC586년 바벨론에 멸망할 때까지 344년 동안 20명의 왕이  통치하고 , 북왕국 이스라엘은 BC931년부터 BC722 앗수르에 멸망할 때까지 208년 동안 19명의 왕이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아도니야의 이야기는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하기 직전 BC970년 전후에 일어난 권력 투쟁의 이야기입니다. 다윗이 어떻게 왕이 되고 통치했는가 그 자세한 이야기는 지난번 수양회에서 자세하게 살펴봤기 때문에 생략하고 다윗 말년에 왕위 승계를 놓고 아들들 사이에 벌어진 권력다툼에 대해서만 좀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윗은 30세에 왕위에 올라 40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는 과정을 보면, 하나님 뜻에 따라 사무엘은 다윗에게 먼저 기름을 붓습니다. 얼마 후에 사울이 블레셋과 전투 중에 전사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죽음에 대해 공개적으로 슬픔을 드러내며 애도의 뜻을 표한 후 하나님의 지시대로 헤브론으로 올라갑니다. 헤브론은 조상 아브라함이 한 때 거주하던 역사적 장소였습니다. 거기서 유다사람들은 다윗을 유다족속의 왕으로 추대합니다. 다윗은 그 때부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까지 7년 6개월 동안 헤브론에 머물며 왕권을 행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사울의 왕위를 계승하도록 사무엘을 통해 미리 기름 부었다고 해도, 왕위를 계승할 자격은 사울의 아들에게 있는 것으로 보일 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을 왕으로 세운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대단한 용기였습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것은 사울을 따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배신과 반역행위였습니다. 실제로 사울의 군장 넬의 아들 아브넬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마하나님으로 데리고 가서 유다 외에 나머지 지파의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후부터 2년 동안 다윗을 지지하는 세력과 사울의 아들을 지지하는 세력간에 왕권을 놓고 전쟁이 벌어졌습니다(삼하3:1,6) 

다윗과 사울의 아들 간의 대결은 이미 다윗의 승리로 결정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사울의 불순종에 실망하셔서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권력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아브넬은 사울의 가문에 충성하는 것처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왕 편에 서서 실권을 잡고 사울 왕의 첩을 범했습니다. 비록 사울 왕이 죽었다고 해도 신하였던 자가 왕의 여자를 취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이스보셋 왕이 아브넬을 책망하자 이에 격분한 아브넬은 다윗을 만나 왕권을 넘겨주기로 하고 돌아오는 중에 동생 아사헬의 원수를 갚으려는 요압에게 살해당합니다. 므비보셋에게 베냐민지파 출신 두 군장 바아나와 레갑이라는 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민심이 다윗왕에게 기운 것을 깨닫고 자기 왕 므비보셋의 수급을 베어 가지고 다윗에게 가서 권력을 바치며 살기를 도모했지만, 오히려 다윗은 주군을 배신한 두 군장을 처형시켜버렸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다윗을 왕으로 받아들였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궁궐을 짓고 성곽을 건설한 후 헤브론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거처를 옮겨 거기서 33년 동안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비길 자가 없을 만큼 훌륭한 왕으로 평가받습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섬겼고, 재위 기간 동안 다윗은 사울왕 때보다 훨씬 강력하고 큰 부국강병의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주변 나라를 평정해 영토를 확장시키고  조공을 받아 금을 은처럼 흔하게 쓸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 부를 바탕으로 성전을 건축할 재원을 마련해 아들 솔로몬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사후의 권력 승계에 대해서는 미리 충분하게 대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네째아들인 아도니야가 아직 아버지 다윗왕이 살아 계신데도 자기가 왕이 되려고 은밀하게 군사들을 준비시키고 요압장군과 아비아달 제사장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오늘날로 말하면 대통령 출마 선언 비슷한 자리를 만들고 자기 모든 동생 왕자들과 유력자들을 초청했습니다. 말하자면 역심을 품고 반역을 도모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 생전에 반역을 도모한 것이 아도니야 뿐만 아니었습니다.다윗은 헤브론에서 여섯 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첫째가 압논(아히노암 소생), 둘째가 다니엘(아비가일 소생), 셋째가 압살롬(그슬 공주 마아가소생), 네째가 아도니야(학깃의 소생), 다섯째가 스바댜(아비달 소생), 여섯째가 이드르암(에글라 소생) 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 온 후에도 밧세바로부터  시므아, 소밥, 나단, 솔로몬 네명의 아들을 더 얻었고, 그 외에도 아홉 명의 아들이 더 있었습니다(역상3:1-9). 

조선시대 사극을 봐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왕에겐 아들이 적어도 문제고 많아도 문제입니다. 아들이 없어서 왕권이 다른 형제에게 넘어가게되면 정권안정차원에서 또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반면에 아들이 많으면 왕위를 높고 권력투쟁이 벌어집니다. 부귀영화를 노리는 신하들이 분열해서 자기에게 유리한 왕자들을 지지하고 다투다 왕이 되지 못한 왕자에게 반역의 누명을 씌워 죽이라고 왕을 못살 게 굴고 결국 왕은 할 수 없다는 듯 사약을 보냅니다. 이런 것 보면 권력과 상관 없는 환경에서 사는 게 좋습니다. 권력을 잡으려는 정치인이 아니라도 사람들이 있는 곳에선 어디서나 더 높아지려고 다투는데,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자가 높아진다는 걸 유념하면 좋겠습니다.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를 높여서 자신이 왕이 되기를 도모했습니다. 서열상 첫째  암논은 압살롬에 의해 죽고, 둘째 길르압은 활동 기록이 없기 때문에 족보에 나오는 명단 외에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셋째 압살롬은 우리가 이전에 살펴본 것처럼 반란을 일으켜 잠시 왕권을 쟁취하는 듯하다가 결국은 진압군에 쫓기다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넷째인 아도니야가 왕위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습니다. (참고: 삼하 3:1∼5). 
  
왜 아도니야는 좀더 참고 기다리지 못했을까요? 아마 아도니야도 가만 있어서는 왕위가 자기에게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다윗의 뒤를 이을 왕이 누가 되면 좋은지 하나님의 뜻이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없었습니다. 다윗 왕이 밧세바에게 솔로몬으로 왕을 삼겠다고 했다는 것이고, 나단도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인데, 세속정치에선 힘이 있는 자들이 얼마든지 이런 약속쯤은 뒤엎을 수 있고 그런 역사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아도니야도 한발 빠르게 움직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도니야의 집권전략을 그렇게 좋게 기술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도니야는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면서 솔로몬과 선지자 나단은 배제했습니다(10절). 아마도 궁중에서 나도는 소문, 차기 왕위 계승은 솔로몬이라고 다윗 왕이 약속했다는 이야기를 아도니야도 들어 알고 있었던 것같습니다. 그래선지 솔로몬과 나단만 제외하고 왕궁에서 영향력있는 모든 인물을 다 자기 편에 서도록 불렀습니다.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발빠르게 움직인 인물은 나단입니다. 이 때 나단은 선지자라기 보다는 정치 모사꾼, 혹은 책략가로 등장합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 주에 말씀하겠습니다. 오늘은 아도니야 이야기만 하고 마칩니다. 

결국 아도니야는 반란에 실패하고 솔로몬 통치 아래 겨우 생명을 유지하는 처지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나 아도니야는 형인 자신이 거부되고 한 참 아래 동생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한 이런 현실에 결코 승복할 수 없었던 것같습니다.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를 찾아가 솔로몬왕께 말해 아비삭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밧세바는 아비삭이 별로 달갑지 않은 탓에 아들 솔로몬에게 별 생각없이 아도니야의 청탁을 전달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속샘을 알아차리고 격노한 끝에 결국 아도니야를 죽였습니다. 

왕의 여인을 계승하는 것은 오직 왕위에 오른자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아도니야는 왕위는 빼았겼더라도 아비삭을 차지해서 은연 중에 합법적인 왕위 계승자는 자신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훗날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이걸 간파하고 왕권에 도전하려는 속샘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난하며 최대의 정적인 아도니야를 제거했습니다. 
  
열왕기 역사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어떤 왕이나 인물이 얼마나 잘했느냐 못했느냐의 문제보다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언약과 그 성취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가져야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상황논리보다 하나님의 말씀, 언약에 근거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도 깨닫기 바랍니다.  아도니야는 상황 속에서 행동의 근거를 찾았습니다. 형들이 죽고 이제 자기가 첫번째 자리에 있으니 왕위는 당연히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 행동했습니다. 하지만 원래부터 왕권은 하나님께 있었고 하나님께서 마음에 드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복을 구하기 전에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기를 힘쓰기 바랍니다. 그러면 복도 따라 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