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목자와 좋은 양

베드로전서 5장 1-6절 - 안나실목자

한국에서 5월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사랑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자는 의미에서 여러 날 들을 지키는 아름다운 풍습이 있습니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등입니다. 물론 처음 제정 되었을 당시보다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긴 했지만 말입니다.
교회에서는 스승의 날을 목회자의 날로 지냅니다. 영적 스승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는 뜻이지요. 스승이라는 말에 아마 여러분 사이에서 과연 늘푸른 교회 가운데 스승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있는가 반문 할지 몰라 영적 형이나 언니라고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오늘 우리 교회 가운데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앞서서 양들을 좋은 것으로 인도하고자 하거나 또는 뒤에서 양들이 뒤쳐지거나 쓰러지지 않게 울타리가 되어 주고자 하는 목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목자’라고 하면 요한복음 10장에 제시된 ‘선한 목자’의 표상이신 예수님에 대해 말씀을 나누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오늘은 목자 되신 예수님의 양이었다가 예수님의 명령으로 목자의 삶을 살았던 베드로 사도에 대해 말씀을 나누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수제자였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의 양들을 돌보라는 말씀을 처음으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실패한 베드로를 다시 불러 자신이 하늘에 오른 후에 이루어질 교회를 맡기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이 조반을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하시고”(21:15)
예수님이 고난 당하실 때 세 번씩이나 부인함으로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절망감에 사로잡혀 생업에 돌아가 있던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가 “네가 왜 나를 세 번이나 부인했느냐”고 물으시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나를 사랑하고 있느냐고 물으셨고 그렇다면 “내 어린 양들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나의 양들을 잘 돌보라는 목자의 책임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잘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길 바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갓 태어난 당신의 교회에 정말로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허물이 많았지만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에게 당신의 교회를 맡기기로 하신 것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나이 어린 자녀들을 두고 죽음의 문을 넘으려고 순간에 부모는 과연 어떤 말을 하게 될까요? 사랑한다, 미안하다, 너희들로 인해 행복했다…등등의 말을 하겠죠. 그리고는 좀 더 큰 자녀에게 동생을 잘 돌보라고 부탁하지 않을까요? 동생보다는 형과 언니가 그래도 부모의 마음을 알고 자녀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떻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알기에 꼭 부탁하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습니까?
주님의 용서하심을 체험하고 주님의 교회를 부탁 받은 베드로는 과연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
까요? ‘반석’이라는 뜻을 가진 베드로는 그 이름에 걸맞게 목자장이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예수님의 양들을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목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였습니다. 순교하기 전에 예수님께 받은 사명을 똑같이 주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하기 위해 오늘의 말씀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에게 있어 목자와 양의 의미는 좀 더 특별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베드로 사도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이제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교회의 목자에게, 또 양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살펴 보고자 합니다.
1절에 “너희 중에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라고 했는데 여기서 ‘장로’가 누구냐에 대한 구분은 교단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교회 행정 보다는 목양사역을 한다는 의미에서 목사라고도 하고 말 그대로 장로교의 장로라고도 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함께 장로 된 자’라고 한 것을 볼 때 직함 보다는 교회의 연장자, 즉 영적 아비의 역할을 하는 목자들에게 주신 말씀으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을 사랑하여 교회를 돌보는 책임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받아 이들을 통틀어 ‘목자’라고 하겠습니다.
  2절에서 베드로는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고 돌아 보되…”라는 말로 시작하여  목자가 가져야 할 마음 자세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첫째는 부득이 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자원함으로 하라고 합니다. ‘부득이 함으로’란 ‘의무감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슨 선한 일이라도 억지로, 마지 못해서, 의무감 때문에 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베드로에게 나중에 의의 면류관을 줄 테니 내 양을 치는 일을 좀 해주지 않겠느냐고 물으신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신 것입니다. 목자로의 부르심은 한 분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체험과 거역할 수 없는 사랑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라고 합니다. 그 어떤 일이 되었든 교회에서의 일에서 사사로운 이익을 구해서는 안됩니다.  즉 대가를 바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3장 5절에서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라고 했습니다. 그러려면 그 일을 하는 뜻이, 목적이 즐거워야 합니다. ‘즐거운 뜻’이란 준비된 마음으로 열심히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맡겨 주신 목양사역에는 예수님을 사랑해서 책임을 감당하려는 순수한 동기와 예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하려는 준비된 마음이 필요합니다.
셋째는 3절 말씀에서 맡겨진 자들을 지배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양무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군가 다른 사람을 인도하는 자리에 서게 될 때 마음이 높아져 권위 의식을 가지고 대하기 쉬워집니다. 양들을 인도하는 목자의 자리를 마치 명령으로 움직이는 군대 조직의 대장으로 인식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말로 주장하기 보다 삶으로 본을 보여 양들로 따라 오게 하는 것이 목자의 진정한 리더쉽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5-27)”
이런 마음과 자세로 주님이 맡겨 주신 양들을 잘 인도하는 목자에게 베드로 사도는 4절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선포합니다.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이는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한 자들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부족하지만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맡기신 양들을 예수님께로 이끄는데 헌신하는 삶을 산 결과로 주어지는 하늘의 상급, 곧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쓰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면류관을 얻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 과정에서는 결코 만족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직 목적이 달성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 사랑이 원인이 되었다면 그 과정은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고, 은혜를 경험하는 여정이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양들에게 주신 권면의 말씀을 살펴 보겠습니다.
5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젊은 자들아’ 라고 불렀습니다. 1절에 ‘장로들에게’ 라는 표현에 대응하는 용어로 목자들의 인도함을 받는 양들을 지칭합니다. 이들에게 베드로 사도는 세 가지 권면을 합니다.
첫째로 목자들에게 순복 해야 합니다. “순복 하다”라는 말은 자신을 목자의 권위와 지도 아래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서 특별히 존경할 만한 그 무언가를 발견하지 못하면 기질상 그 사람의 지도를 받기를 거부합니다.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자신의 직업에서 상사에게 순복 하는 것은 돈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것도 아닌데 교회에서 자신보다 별로 뛰어난 것도, 존경할 만한 것도 없어 보이는데 목자라는 이유로 순복하라고 하니 마음이 편칠 않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목자들에게 먼저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교회를 맡겨 목자 삼으시기 전에 “목회에 대하여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 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네가 내 어린 양들을 사랑하느냐?”라고도 묻지 않으셨습니다. 오로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목자로 부르심이 인간적인 어떤 조건이나 자격을 따져서가  아니라 위로부터 말미암음을 일깨워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베드로만 보아도 그는 완벽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을 배반하는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왜냐하면 목사님과 저를 비롯해 늘푸른 교회에서 목자의 일을 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허물 많은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들로부터 인도와 돌봄을 받지만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분은 사람 목자가 아니라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빛 자체가 아닙니다.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오직 증거자 일뿐 입니다. 다시 말해서 목자는 증거할 대상을 가져야 하며, 자신의 삶을 인하여 예수님을 믿게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빛이 아니기 때문에 완벽할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목자가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낄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매 순간 기도하고 말씀 보며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겠습니까?
 설령, 목자에게 자신보다 못하는 그 어떤 부분이 보여도 양들은 목자에게 순복 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목자 그 개인에게 순복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목자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께 순복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 13:17)
여기서 ‘경성한다’는 말은 ‘책임진다, 지킨다’는 말이고,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마지막 결산 보고를 하는 자인 것처럼’ 이라는 뜻입니다. 쉬운 성경을
보면 잘 이해가 됩니다.
“여러분은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그들의 권위를 존중하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책임질 자들이기에 여러분을 주의해서 살피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 일을 괴로워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들의 일을 힘들게 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둘째는 양들은 서로에게 순복 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5절에서 “다 서로……허리를 동이라”고 했습니다. ‘다’라는 말은 우리 각 사람, 나이와 성별과 계층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제외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 ‘허리를 동이라’는 말은 ‘종이 앞치마를 두르고 주인을 섬긴다’는 의미로 예수님이 고난 받으시기 전 마지막 식사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던 섬김의 자세를 말합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 5:21에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하였습니다. 또 갈라디아서 5:13 에서는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기를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5:15)고 경고하였습니다.
따라서 목자 역시 주님의 양이라는 차원에서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순복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이 하는”(골3:23) 태도이며, 주님이 기대하시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셋째는 양들은 겸손으로 옷을 입어야 합니다. 5절에 ‘겸손으로’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다 서로에게 순복 하되 겸손으로 하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서로에게 순복 하는 마음의 태도를 강조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유익을 얻기 위해 잠시 동안 순복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심장과 폐부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겸손’이란 무엇입니까? 예의 갖추고 말을 부드럽게 하고 고개 숙이는 것을 겸손으로 알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경에서 ‘겸손’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항상 따라 사용되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교만’입니다. 교만이 하나님 없이 자기 방식대로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이며, 겸손은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입니다. 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개종 직후에 자신을 가리켜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전 15:9)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은혜 가운데 그가 성숙해 감에 따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엡 3:8)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후 그가 순교 당하기 직전에는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로 표현했습니다. 진리 안에서 자신을 알게 되니 자신의 모습이 아무 것도 아님을 고백하게 되는, 그래서 하나님을 더욱 더 의지하게 되는, 나아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나 외의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깨닫게 되는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겸손인 것입니다.
 빌립보서 2:3에서 사도 바울은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교훈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교회의 가족이 된 우리 모두는 서로를 존중하면서 서로에게 복종하는 마음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이며 그러할 때 교회는 하나님의 의도하신 대로 성령 안에서 하나 된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여러분 ‘사육’과 ‘양육’의 차이를 아십니까?  네, 동물을 기르는 것을 사육이라고 하고 사람을 키우는 것을 양육이라고 합니다. 사육 당하는 대상은 어떠합니까?  절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뇌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입맛에 맞는 사료를 먹으며 편하게 지낼 뿐입니다.  하지만 양육은 다릅니다. 깨달음이 있고, 감화가 있고, 비록 깎이는 아픔이 있지만 성숙하는 기쁨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들을 그것을 거부합니다. 더 정확히 말해서 주님의 양이라고 자처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양육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교회는 출석하되 그 누구의 간섭도 받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저 입맛에 맞고 가려운 귀를 긁어주는 말만 해주기를 바라고, 복잡하고 골치 아픈 것은 싫고, 편하고 쉽게만 살려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어느 곳에 있습니까? 사육의 현장입니까? 아니면 양육의 현장입니까?
사랑하는 목자 여러분, 목자는 음지에서 일 하고 양지를 지양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양을 지키기 위해 못 먹고, 못 자야 합니다. 진리를 외쳐야 하기 때문에 구설수에도 많이 오릅니다. 사람에게 가장 힘든 사람 관계와 사람 견디는 것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이 길을 함께 갑시다. 사람들의 칭찬이 없고 대가가 없어도 자원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감당합시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맡기신 양들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아 냄으로써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 보여 줍시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십자가의 길이며 생명의 길입니다. 그렇게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영광의 면류관을 약속 하셨습니다.
  또 언젠가는 목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 현재의 양이신 여러분, 부족하지만 감당하려고 하는 여러분의 목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순종합시다. 여러분보다 부족해 보이면 불평하기 이전에 기도해 주십시오. 아직 목자의 자리는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하라고 당신을 그 자리에 두신 것일지도 모릅니다. 또 목장 안에 있는 다른 형제 자매들에게도 겸손한 마음으로 순종합시다. 그렇게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높여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늘푸른 교회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백성, 즉 교회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헌신이 포함되지 않은 그리스도께 대한 헌신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6절의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말씀대로 실천하여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 갑시다.

 예화를 하나 소개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어린 소년이 암으로 투병하고 있었습니다. 아들의 죽음을 선고받은 엄마는 아들과 함께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The Lord is my shepherd"(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영어로 다섯 글자 입니다. 엄마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으며 이 말씀을 설명하여 가슴에 심어 주었습니다.
 특별히 네 번째 손가락을 꼽을 때에는 힘을 주면서 “하나님이 너의 목자가 되시니 결코 너를 버리지 않으실 거야.” 두 시간 후 이 어린 소년은 눈을 감았습니다. 차디차게 식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본 순간 어머니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들은 죽어가면서 자기의 오른손으로 왼손의 네 번째 손가락을 꼭 쥐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어린 소년은 “나의 목자”되신 예수님의 손을 꼭 잡고 영원한 하나님의 집으로 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