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내일의 삶을 만든다

창37:5-11.

오늘은 ‘꿈이 내일의 삶을 만든다’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꿈이 좋아야 값진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꿈이 없으면 세월만 보내며 늙어갈 것입니다. 미래에 뭐가 되고 싶든지, 뭔가 하고 싶든지 그런 꿈이 있어야 집중력이 생깁니다. 년 초나 학기 초 계획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것은 미래의 꿈과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먼저 인생을 걸만한 꿈을 찾고 그 꿈을 성취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 하루 하루 보람된 삶을 살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인생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라는 큰 틀이 있습니다. 그 다음엔 개인적인 꿈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살겠다고 말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나의 삶 속에 나의 꿈으로 구체화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내 꿈이 이뤄질 때 하나님의 뜻도 이루어드리게 됩니다.

요셉의 인생을 보면 이 양면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의 틀에서 보면 요셉이 태어나기 수 백년전에 하나님은 요셉의 인생을 포함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창세기 15장 13절을 보면, 하나님은 요셉의 증조할아버지인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난 요셉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주인공 중에 한 사람으로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이번에는 요셉 개인의 인생을 통해 그것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생각해봅시다. 요셉은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야곱이 더 사랑하던 아내 라헬이 낳은 요셉은(창30:22-24) 더 사랑받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에게도 특별했습니다. 어느날 요셉이 밭에서 곡식 단을 묶는 꿈을 꿨습니다. 요셉의 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단은 요셉의 단을 둘러서서 절을 했습니다(창37:7,8). 무엇을 뜻하는지 알죠? 그 뿐 아니라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도 꾸었습니다.(창37:10). 이 꿈들은 요셉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남다른 것을 보여줍니다.   

꿈이라는 게 보통은 허망한 것인데, 드물긴 하지만 앞으로 될 일을 미리 보여주는 신령한 꿈도 있습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의 계획을 미리 보여주는 그런 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후손들이 애굽에 내려가 종이 되어 고통을 받다가 400년 후에 애굽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를 만드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먼저 애굽에 보내 징검다리를 삼아 야곱의 모든 가족을 애굽으로 이주시킬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꿈을 통해 요셉에게 이것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요셉이 꿈을 꿀 당시는 그 의미를 다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중에 애굽에 내려가 자기 인생 속에 전개되는 일들을 보면서 전날의 꿈이 뭘 의미하는지 깨달았을 것입니다.

꿈은 대개 현실과 다르다고 말하는데, 성취되기 전까지는 아직 꿈이니 그럴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요셉은 형제들 중에서도 서열이 낮은 열한 번째였습니다. 꿈처럼 형들이 막내인 요셉에게 엎드려 절하는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더구나 해와 달로 상징되는 부모까지 아들 요셉에게 나가 엎드려 절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형들은 제 주제를 모르는 동생을 애굽에 종으로 팔아버리고 아버지에겐 악한 짐승이 잡아 먹었다고 말했습니다.

애굽에 팔려간 요셉은 가족들에겐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종이 된 애굽 땅에선 그가 의지할 곳은 하나님 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꿈도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다행하게도 요셉은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철저한 신앙을 배웠을 것입니다. 야곱처럼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 투쟁하며 하나님을 의지한 사람도 없습니다. 요셉이 아버지 야곱이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보고 자라지 않았겠습니까? 부모는 자녀에게 믿음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며 하나님께 죄를 범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을 보면 그에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더라도 세상에서 인생이 항상 잘풀리는 것만은 아닙니다. 유혹을 물리치느라 웃옷이 벗어지는 것도 모르고 도망나왔는데, 반대로 그 옷이 겁탈하려던 증거라며 안주인은 요셉에게 누명을 씌워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러면 정말 억울하죠. 그런데 요셉은 하나님을 원망한 것 같지 않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도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요셉을 신임한 감옥책임자는 죄수 관리하는 일을 맡겼습니다.

그 감옥은 보통 감옥이 아니라 애굽왕을 섬기는 고위 대신들을 수용하는 곳이었습니다. 죄수들 중에 왕의 주연을 담당하던 술관원과 떡관원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 술관원은 요셉의 해몽대로 오해가 풀려 복직이 되었습니다. 그 후 어느날 바로 왕이 꿈을 꾸었는데 살진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는데, 그 뒤에 또 흉악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오더니 살진 암소들을 잡아 먹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왕은 꿈이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은데 알 수 없이 고민이 되어 애굽의 모든 술객과 박사를 불러다 물었으나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 때 술관원이 왕께 나가 요셉을 불러다 해몽을 들으시도록 천거했습니다.

바로 왕은 요셉을 왕궁으로 불렀습니다. 왕은 자신의 꿈 이야기를 요셉에게 들려주고 그것이 무슨 뜻인지 물었습니다. 꿈 이야기를 듣고 난 요셉은 앞으로 7년 동안 풍년이 있은 직후 이어서 7년 동안 흉년이 올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요셉은 왕에게 풍년이 들 때 소출의 5분의 1을 거두어 비축했다가 나중에 흉년을 대비하도록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바로 왕은 요셉의 총명에 감동하여 총리직에 앉혔습니다. 애굽의 대신들은 히브리 노예출신 요셉이 자기들 머리 위에 오르는 것이 좋을리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을 요셉이 알아내고 대안까지 제시해 살 길을 열어주었으니 아무도 반대할 수 없었을 겁니다.

총리가 된 요셉은 풍년이 든 해마다 풍부해진 곡물을 비축해 앞으로 닥쳐올 극심한 흉년을 대비했습니다. 어느덧 7년이 지나고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각 나라에서는 기근이 심해졌지만, 애굽만은 비축한 곡식이 넘쳤습니다. 각국 백성들이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가나안 땅도 극심한 흉년으로 요셉의 형들도 곡물을 사러 애굽으로 왔습니다. 그들은 총리가 된 동생 요셉에게 나가 절했습니다. 요셉은 자기에게 엎드려 절하는 형들을 보며 오래전의 꿈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그 때 요셉은 자신이 애굽에 팔려온 것이 모두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였음을 깨달았습니다. 나중에 요셉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형들에게 “형님들은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45:5).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시기를 살고 있는지 역사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전도서 3장 1절에는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나라도 일어설 때가 있고 쇠할 때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고난을 받을 때가 있고 영광을 취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와서 십자가에 달려죽으실 때는 분명 고난을 받을 때입니다. 그런 시기에 주님을 따르려면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는 영광을 취할 때입니다. 그 때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지금이 고난받을 때인지 영광을 취할 때인지 분별있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요셉을 볼 때 꿈만 가지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이 돕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로가 요셉을 총리로 세울 때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있는 자가 없도다”(창41:39) 평가했습니다. 애굽 귀족이나 대신들에게 요셉은 가나안에서 굴러온 노예에 불과했습니다. 그를 자기들 머리 위에 둔다는 것은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자기들 중에 어느 누구도 풀지 못한 왕의 꿈을 해석하고 대안까지 제시해 왕의 신임을 받는 바람에 반대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먼저 꿈을 갖기 바랍니다. 아니 성령으로 꿈이 생겨나길 바랍니다. 베드로 사도께서는 요엘선지자의 말을 인용해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2:17)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예언, 환상, 꿈 모두 미래에 일어날 일과 관련된 것입니다. 잠언 29장 18절에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하게 행동한다”는 말씀이 있는데, ‘꿈이 없으면 막산다’는 뜻입니다. 계획이 없으면 기분대로 행동하죠. 꿈이 있어야 목표가 있어야 방황하지 않습니다.

인종차별로 고통당하던 시절에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나에겐 꿈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피부색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대우 받으며 살아가는 정당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었습니다. 아프리칸-아메리칸들은 피부색이 검다고 차별받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는 좁게는 자기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넓게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인생을 바쳤습니다. 인종차별이 엄격하게 법적으로 금지되어 지금은 그의 꿈이 실현되었습니다. 킹 목사의 꿈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꿈이었습니다.

인생의 가치와 크기는 마음 속으로 꿈을 꿀 때 결정됩니다. 어떤 꿈이냐에 따라 인생의 가치와 크기가 달라집니다. 조만식 선생을 ‘한국의 간디’라고 불립니다. 조선생님은 북한 동포를 버릴 수 없어 북한 땅에 남아 있다가 결국 처향당한 분입니다. 그분은 정치인으로서 개인적인 성공이나 직위보다 조국의 미래와 국민의 안위를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남북이 분단통치되던 시점에 남한으로 내려왔다면 당시 지명도로 볼 때 조선생님이 남한의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북한 동포를 버려둘 수 없어 남쪽의 대통령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결국 죽음의 길을 갔습니다. 

우리 앞에 어떤 인생이 예비되어 있는지 때가 이르기 전엔 알 수는 없습니다. 영광이 기다릴지, 고난이 기다릴지 모릅니다. 요셉과 다니엘은 고난 끝에 영광을 누렸습니다. 반면에 예수님과 침례 요한은 비참한 죽음으로 인생을 마쳤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의 차원에서 보면 올라가는 것도 내려가는 것도 영광입니다. 여기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개인적 성공이나 실패 같은 개념은 없습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틀 속에서 인생을 바라보며 미래의 꿈을 가지고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