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인간관

창세기1:26-28

지난 주일 세계관은 근본적인 질문에 나름대로 해답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근본적인 질문 중에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 질문들과 관련된 기독교인간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인간의 기원과 인생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기독교와 무신론적 인본주의는 서로 다르게 봅니다. 여러분이 지금 인생에 대해 난상토론이라도 해보면,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점들이 적잖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아 인생에 대한 나름의 관점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세계관이 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여러분을 설득하거나 여러분 생각을 무시하려는 게 아닙니다. 기독교가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인생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소개하려는 것입니다. 만일 기독교적 인간이해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더라도 일단 기독교는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인생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편한 마음으로 들어보기 바랍니다. 

1) 하나님의 인간창조
기독교 인간관의 첫번째 특징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영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믿습니다. 세상이 만들어 지기 전에 모르는게 없고 못하실 일이 없는 전지하고 전능한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는데, 마지막 여섯째 날에 인간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지난주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성경을 보고 아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6, 27절을 봅시다.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Then 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in our likeness, and let them rule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the birds of the air, over the livestock, over all the earth, and over all the creatures that move along the ground."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So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of God he created him; male and female he created them.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면,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 중심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가정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중심이 되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의 가장 첫번째 의미는 하나님이 나를 만드셨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알아야 할 것은 인간은 하나님의 이미지와 생김새를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동물들을 만들 때는 그냥 종류대로 만들었을 뿐이지만 오직 인간에게만 하나님의 이미지도 주고 하나님의 모양도 주고 더 나가서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이 되게 했습니다. 창세기 2장 7절을 봅시다.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the LORD God formed the man from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the man became a living being.(KJV, a living soul)

성경의 증거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다른 동물들은 육체의 생명만 가진 존재일 뿐입니다. 어떤 분 말처럼, 죽으면 먹으면 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릅니다. 뭐가 다르게 만듭니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간직하고 생명의 본질인 하나님의 숨이 불어넣어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인간을 살아있는 영혼이라고 불렀습니다. 즉 인간은 영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l

진화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에게 하나님의 이미지니 모양이니 생김새니 그런 게 있을 수 없습니다. Homo-sapience ,즉 지적 능력이 다른 동물보다 더 발달해 지혜로 다른 동물을 지배하는 위치에 서있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동물과 다른 게 없습니다. 동물처럼 인간도 죽어 육체의 생명이 끝나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입니다. 영혼이니 영생이니 구원이니 이런 말들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허망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무신론적 인본주의 인간관입니다. 여러분은 어느쪽입니까?

2) 타락한 인간
기독교 인간관의 두번째 특징은 불행하게도 인간은 하나님께 범죄하여 죄의 형벌로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늙어서 죽는 줄 알지만 범죄해서 죽는 것입니다. 동물은 다 늙어서 죽습니다. 동물은 육체의 생명 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인간은 살아있는 영혼이 되어 죽지 않게 만들어졌습니다. 지금도 영혼엔 생물학적 생명의 소멸이라는 죽음은 없습니다. 영혼에 적용되는 죽음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어 고통을 당한다는 뜻이지 생물학적 생명의 소멸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에덴 동산에서 살게 하시고 모든 나무의 열매를 따먹어도 되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따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6,17)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말씀을 유념하며 조심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사단이 뱀 속에 들어가 이브에게 접근했습니다.

사단이 들어오자 뱀이 말을 하게 되었는데, 뱀이 이브에게 “하나님이 동산 모든 나무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물었습니다. 이브는 뱀에게 “동산 나무의 실과를 먹어도 되지만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말씀하셨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뱀이 이브에게 “결코 죽지 않을걸, 죽기는커녕 그걸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지혜를 분별하는 능력이 생겨날거야” 대꾸했습니다. 이브는 사단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선악과를 따 먹고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했습니다.

왜 선악과를 동산 중앙에 심어서 그걸 따먹고 인간이 범죄하여 죽게 만들었느냐고 하나님이 나쁘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지음을 받은 인간이 창조주에게 할 말이 아닙니다. 집이 건축가에게 왜 이렇게 만들었냐고 불평하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너 참 주제를 모르고 건방지다 그럴 겁니다. 하나님을 알기 전까지 인간은 참 주제를 모르고 건방집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뜻으로 거기에 선악과를 만들어 놓으셨든간에 아담과 이브가 누가 뭐라든 하나님의 경고대로 가까이하지 말고 따먹지 않았다면 문제될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처럼 지혜롭게 된다는 말에 속아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를 범해 그 벌로 죽음이 선포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은 엄청난 영적 비밀이 숨겨있는 곳입니다. 갑자기 말하는 뱀이 등장해 이브를 유혹하여 첫 사람 아담과 이브를 범죄자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브를 유혹해 범죄하게 만든 뱀에게 마치 사람을 상대하시듯 여자와 원수가 되어 그들 후손끼리 발쿰치를 물고 머리통을 박살내는 싸움을 벌일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이브에겐 죽을 것 같은 해산의 고통을 겪게 하고 아담에겐 먹고 살기 위해 죽어라 일하는 고통을 겪다가 결국은 둘 다 죽어 흙으로 돌아가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서부터 헛되고 헛된 인생살이가 시작된 것입니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뱀이 말을 하게 된 것은 사단이 뱀에게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동물에게 의사소통하는 본능적인 소리나 몸짓이 있긴 하지만 말을 하진 못합니다. 말은 영적 존재들의 의사소통 수단입니다. 하나님도 말을 하고 천사도 말을 하고 사단과 귀신도 말을 하고 인간도 말을 합니다. 인간은 육체를 가진 영적 존재입니다. 뱀의 후손, 여자의 후손이 서로 피터지는 싸움을 한다는 건 또 뭡니까? 뱀의 후손은 사단을 따르는 악한 영인 귀신들을 가리킵니다. 여자의 후손은 마리아의 몸에서 탄생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사단이 주장하는 사망의 권세를 깨뜨렸습니다. 하지만 사단도 아직까지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공격해 발꿈치를 물고 늘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영적 세계에 소경이 된체 죄가운데 살다가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없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3) 영혼의 죽음
죽음의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생물학적 죽음은 영혼이 죽은 인간 세포가 노화되는 과정에서 질병으로 인하여 metabolism system이 붕괴되어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생명력이 사라진 죽은 육체는 부패하면서 시간이 흐르면 기본 원소로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럼 영혼에도 이런 식의 죽음이 적용될 수 있습니까? 영혼에 생물학적 죽음이 가능합니까? 영혼은 살과 뼈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생물학적 죽음 같은 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영혼이 죽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영혼의 죽음을 이해하려면 영혼의 특징부터 알아야 합니다. 본래 인간의 영혼은 어디서 왔죠?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 모양을 만들고 숨을 불어넣자 사람이 영혼이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영혼의 본질은 하나님의 숨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의 숨 또한 영적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의 특성중 하나는 죽지 않는다, 소멸되지 않는다 의식이 살아있다 그런 겁니다. 여러분 사람이 죽으면 의식이 소멸됩니까? 아닙니다. 육체의 기능이 정지해 산 사람들과 접촉할 수 없을 뿐 죽은 후에도 영혼은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9절 이하에 부자와 거지 나사로가 나옵니다. 두 사람 다 죽었습니다.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습니다. 부자도 죽어 장사지냈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꽅 가운데서 고민합니다” 애원했습니다. 이 본문을 잘 보면, 부자는 이미 죽은 사람인데 산 사람처럼 고통을 느끼고 또 혀에 물한 방울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이로 보건데 죽은 영혼은 고통을 느끼고 또한 영체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잠을 죽음에 비유하곤 하죠. 곤하게 잠들면 죽은 사람처럼 세상과 소통이 끊어지지만 꿈도 꾸고 의식도 있습니다. 툭 건드려 깨어나면 산 것이고 아무리 흔들어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그냥 계속 잔다면 육체는 죽은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혼수상태(혼이 잠을 잔다)라고 합니다. 우리가 잠잘 때 꿈꾸며 의식이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혼수상태에서도 의식이 있고 몸은 죽어도 영혼의 의식은 그대로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멀잖아 알게 될 때가 올 겁니다. 이처럼 영혼의 죽음이란 생물학적 죽음처럼 소멸되어 의식도 사라지는 게 아니고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과 분리되어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4) 하나님의 구원계획
육체가 살아있든 죽었든 영혼은 계속 살아있습니다. 죽은 영혼이라는 것은 소멸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영적인 소경이 되어 하나님을 몰라볼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분리된 영혼은 마귀의 지배아래 놓입니다. 영적 세계에서 사망권세는 사단이 가지고 있습니다. 범죄하여 죽어야할 영혼들은 모두 사단이 지배합니다. 사단은 자기가 부리는 귀신들을 보내서 그 영혼들을 지배합니다.

에베소서 2장 2절을 봅시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귀신이 활동합니다. 어떤 사람에겐 아예 들어 앉아 역사하고 어떤 사람에겐 악하고 음란한 생각을 넣어주고 그 생각의 지배를 받아 죄가운데 살게 만듭니다. 집안 대대로 역사하는 귀신도 있습니다. 할아버직에게 역사하던 귀신이 할아버지 죽었다고 함께 죽는게 아니니 그 후손들에게 역사합니다. 영적으로 보면 이 세상은 인간구원을 놓고 하나님과 마귀의 전쟁터입니다.
 
요한일서 3장 8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예수님이 오셨다고 했습니다. 인간을 구원하는 것과 마귀를 멸하는 게 무슨 상관입니까? 이미 범죄한 영혼은 사망 권세아래 마귀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마귀의 지배아래 있는 사람들을 구원시키려면 먼저 사망권세를 깨뜨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실 때 하나님 마음 속엔 이미 범죄한 인류에 대한 구원계획이 수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귀신이라도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세부적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등장했을 때 가장 긴장한 것은 마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 금식하신 직후에 마귀가 나타나 예수님을 유혹했다는 것을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자 마귀는 그 때부터 예수를 죽일 기회만 엿봤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죄 없는 예수님을 죽이는 게 바로 하나님의 구원계획이라는 것은 마귀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대로 마귀는 숨어서 예수를 죽일 기회만 노렸습니다. 마귀는 가롯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었습니다. 유대인을 선동하고 로마병사들을 동원해 죄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예상대로 예수님은 왜 나를 버리느냐고 하나님께 절규하며 죽어갔습니다. 어둠의 권세가 지배하던 그날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나고 마귀는 온 천하의 귀신들을 모아놓고 축배를 들었습니다. 그 모습이 상상이 안됩니까? 그러나 이것은 마귀의 최대 실수요 착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 법정으로 무죄한 예수님을 죽인 사단을 소환했습니다. 사단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범죄한 영혼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단에게 죄없는 예수님을 죽인 책임을 물었습니다. 유구무언인 사단에게 하나님은 예수의 죽음으로 인류의 죽음을 대신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사망권세를 깨뜨렸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그 증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당신을 대신하여 예수님을 죽게 하셨다는 것을 믿으세요. 그러면 당신 영혼이 구원얻고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